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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백제 유적지’로 떠난 여행-上
유네스코가 지정한 백제역사유적지구 웅진성과 송산리 고분군
2017년 05월 18일  03:13:55 이명우 기자 mwoo0902@naver.com

고구려의 침공으로 한강 유역을 상실하고 남하한 백제 문주왕의 시련기를 극복하고 주변국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문화적 발전이 절정에 이른 웅진시대와 사비시대의 백제문화가 현대에 와서 새롭게 조명되는 백제역사유적지구. 동아시아 문명 형성에 기여한 백제의 역할이 생생한 이곳이 유네스코로 부터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지 2년여가 흘렀다. 유네스코 지정을 전후해 변모한 백제역사유적지구를 둘러보는 팸 투어에 참여한 관람후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유네스코 지정한 세계유산임을 알리는 송산리고분군 표석
시련 속에 태어난 웅진시대

-금강을 해자로 둔 천혜요새 공산성

[ 시티저널 이명우 기자 ] 천안에서 국도를 타고 공주에 이르면 새롭게 만들어진 신관동 신시가지 앞에 펼쳐진 비단결 같은 금강을 만난다. 팸투어 집결지인 공주 공산성에 가려면 1932년에 지어진 금강철교를 지나야 한다.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며 사나워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다리지만 지금은 교량으로의 역할과 함께 공주의 관광자원중 하나다.

금강철교를 막 지나면 만나게 되는 공산성.

5월의 푸르름을 더해가는 15일 오전 10시.

16일까지 1박 2일간 충남 공주와 부여 그리고 전북 익산으로 이어지는 백제역사유적지구 팸투어가 시작될 무렵 공산성 앞엔 백제의 향기를 찾아 적지 않은 관람객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 공산성 치소에서 바라본 금강
금강의 물줄기를 방패삼아 축성된 공산성은 불과 해발 80m(최고 표고 110m)에 이르는 나지막한 둔덕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이 바로 백제역사유적지구 첫 번째 코스로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한성시대를 마감한 백제가 회생의 기회를 잡기 위해 둥지를 튼 곳이다.

아버지 개로왕이 피살되고 고구려군에 쫒겨 남으로 내려온 문주왕이 금강을 건너 비로써 한숨을 돌린 곳인 이곳은 산이름조차 없는 둔덕에 자리하지만 앞엔 강물이 넘실거리고 후면은 깍아 지른 듯한 가파른 산세를 보여준다.

주차장에서 공산성으로 들어서는 관문인 금서루에는 5가지 깃발이 펄럭인다. 백제는 사신도를 기본으로 한 4가지 깃발과 중앙기를 합쳐 다섯 깃발로 군사훈련 등에 사용했다는 것이 이곳 문화해설사의 설명이다.

이성의 이름은 백제시대엔 웅진성이었고 조선중기에 공산성으로 명명되었는데 오늘날에도 공산성으로 불린다.

금서루를 지나 조금 더 성 중앙부로 걸어가면 조선시대 16대 왕인 인조와 얽힌 이야기들이 전해오는 쌍수정에 이른다.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피신한 인조는 이곳에서 난이 평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난을 평정했다는 전갈을 받고 그간 시름을 함께 한 2그루의 나무에 옥대를 하사하고 정3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이 유래에서 비롯된 정자가 쌍수정이다. 지금은 나무는 사라지고 없지만 쌍수정은 남아 그날의 인조가 겪었을 감회를 전해준다.

쌍수정 아래엔 백제시대의 연못(연지) 자리하고 이어 나타나는 왕궁지가 지난날의 영욕을 웅변한다.

-백제의 중흥을 알리는 무령왕릉

   
▲ 웅진시대 백제의 왕이나 앙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송산리 고분군. 모두 7기가 있지만 무령왕릉을 제외한 6기가 도굴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문주왕과 삼근왕 그리고 나제 동맹을 맺었던 동성왕까지 호족들에게 피살되는 시련을 겪은 백제는 마침내 25대 무령왕대에 이르러 국력을 회복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성왕이 즉위한 이후 국력을 대외에 과시하며 웅진보다 비옥했던 사비(부여)로 천도를 한다.

이곳 공산성에 서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수백명의 천주교도가 처형됐던 황새바위가 보이고 그 옆으로 많은 백제의 고분들이 위치한 송산리고분군이 바라다 보인다.

송산리고분군은 모두 7기로 발굴된 위치에 따라 1호분부터 6호분으로 불리며 가장 마지막에 발굴(1971년)된 왕릉이 무령왕릉이다. 앞서 발굴됐던 고분들이 모두 도굴로 인해 부장품이 사라졌지만 다행히 무령왕릉만은 도굴을 피해 축조시기와 릉의 주인을 알아볼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백제 25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귀금속 장신구 들. 세공의 섬세함이 오늘날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오늘날 수많은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릉의 주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 하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특히 이곳에서 발굴된 화려한 금관 장식들은 백제의 문화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자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적이라 할 것이다. 만일 이마저도 도굴됐다면 백제의 역사는 실로 초라해 지지 않았을까.

무덤 내부에서는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었음을 알리는 묘지석(墓誌石)과 함께 모두 108종 2,900여 점이 넘는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널길 입구에서 발견된 석수와 왕과 왕비의 왕관 등 장신구를 비롯한 부장품들은 새삼 백제의 세공기술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 공주 한옥 마을에서의 백제 복식 입어보기 체험, 백제시대 왕과 왕비의 복장을 재연한 것으로 복색은 화려하지만 입기에 간편하게 효율성이 강조된 느낌이다.
공주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한옥마을에서의 체험이었다. 다도에 대한 교육과 다도 예절을 배우고 직접 차를 다려 손님에게 접대하는 과정을 학습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찻상을 앞에 두고 주인역이 되어 손님을 접대하려니 여간 서툴지 않았다. 차 한잔의 대접으로 손님을 배려하는 주인의 품격이 배어나오는 듯하여 새삼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백제시대 왕의 복장을 체험 할 때는 과연 백제의 복식을 제대로 재연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오늘날의 한복보다도 훨씬 더 간편한 복장이어서 그런지 신뢰감이 다가오지 않았다. 그만큼 백제인들은 복잡한 의식보다 효율성을 중시하지 않았을까.

이제 백제 부흥을 꿈꾸던 성왕의 발자취를 따라 공주를 뒤로 하고 부여로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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