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벧엘의집은 “행복합시다”라는 표어로 시작했다. 뜬금없이 무슨 행복타령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식구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행복을 찾아 주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런 목표를 세운 것이다.

행복타령을 하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야베스공동체를 시작하면서 경쟁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자활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대부분의 사회적기업이 여전히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야베스공동체만은 경쟁이 아닌 더불어 살아갈 근거를 마련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비전을 공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비전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것은 나의 비전이지 그들의 비전은 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런 태도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야베스의 출발이 또 하나의 일자리가 아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면 비록 지금은 미래가 좀 불확실하더라도 한 번 속는 셈치고 도전해 볼만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베스공동체를 단순한 일자리 정도로만 여기는 것 같았다.

아무리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해도 그들에겐 오늘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실망을 넘어 배신감까지 들기도 했었다.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야베스공동체를 만들고 야베스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보자는 내 이야기가 그들에겐 아무 의미도 주지 못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깨달은 것이 바로 그들은 현재도 행복하지 않고 미래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작 보통사람에게도 행복하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행복하다고 대답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즐겁게 일을 하는 사람도 행복하냐고 물으면 겉으로 보기엔 행복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행복하다고 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의미가 있고 중요한 일일지라도 자신의 행복추구와 맞닿아 있지 않으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자신의 삶의 목표와 맞닿은 무엇이 있어야 한다.

내가 행복하자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들이 볼 때는 그게 무슨 행복조건이냐고 할지라도 그들에겐 소중한 행복의 조건이 된다면 그 행복조건을 지지하고 독려하면서 다른 이의 행복조건을 이해하고 나누자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들이 모여 우리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서로에게 어떤 것이 행복조건인지를 찾는 노력이 바로 배려로 이어지고, 배려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근거가 되고, 서로 이해했기에 같은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행복하자고 하면서 출발한 올해가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아니 얼마만큼 행복의 조건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 벧엘의 행복은 옆 사람에게 눈을 돌리는데서 부터 출발한다. 내가 행복하려고 하는 만큼 옆 사람도 행복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행복이 너의 행복이 되고 우리 모두의 행복이 되도록 타인을 향한 작은 관심이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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