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동 주민 칠월칠석날 전통을 30여년간 이어오고 있다


- 부사동 주민 칠월칠석날 전통을 30여년간 이어오고 있다 -

 

□ 대전시 중구 부사동은 2007. 8. 19(일) 06:00부터 13:00까지 보문산(선바위)과 부사다목적회관 광장에서 “2007년도 부사칠석제”를 개최한다.

○ 매년 칠월칠석날 행사는 고사, 치성, 유래비 제막식, 문화공연 등 다채롭게 펼쳐지며 주민들이 기획하고

○ 이 행사는 보문산과 부사동 주택가 한복판에서 500여명 주민이 참가해 전통과 주민화합 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특히 이날은 주민들의 정성이 담긴 “부사칠석놀이유래비”가 준공되어 더욱 뜻 깊은 행사이다.

○ 칠석날 제사는 고사는 백제시대의 부용처녀와 사득총각의 못 이룬 사랑의 영혼을 달래며, 이날 참가하여 소원을 빌면 득남, 병을 고치고, 샘에 물이 나는 등 소원이 이루어

□ 부사칠석제는 수백년 전통을 이어오며 더불어 부사칠석놀이는 제 35회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최우수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대전 보문산의 동편 자락에 위치한 (부사동) 마을로 이곳에서 전승된 부사 칠석놀이의 유래는 백

부사칠석제는 매년 칠석날, 부사칠석놀이는 매년 10월 200여명의 주민들은 농악과 춤으로 연인(부용이와 사득)의 애듯한 사랑을 제현하는 시연회를 개최한다.

○ 부사칠석놀이는 오랜 역사 속에서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동네의 부흥과 화합을 하는 놀이문화로 발전하였으며

- 그동안 놀이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1990년 이후 1992년도에는 대전직할시 중구 민속놀이로 선정되었고, 1993년 9월11일 대전직할시 민속예술 경연대회 최우수상과 1994년 10월21일 제 35회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최우수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부사칠석놀이유래비의 높이가 3.5m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유래비는 1990년도 부사칠석놀이를 발굴하고 고증에 협조하신 여러분들과 행정기관 및 부사동민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1994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으며 이 뜻을 길이기 위해 지인들의 성금으로 건립하게

 

붙 임 : 사진 제막식 후 별송

 

부사칠석놀이 발굴 및 고증

• 발 굴 : 장택수, 장덕수

고 증 : 한상수(대전대 교수)

• 고증협조 : 신태현, 김선웅, 박덕용, 최성용, 김준헌

한상각(공주대 교수)

 

■ 제3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

• 일 시 : 1994.10.21

• 장 소 : 춘천 공설운동장

• 연 출 : 정인삼(한국농악보존협회 이사장)

출연자(239명,가나다순) 기수, 농악, 소고

 

芙沙七夕놀이 由來

 

부사동(芙沙洞)은 보문산(寶文山)의 동편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옛날 백제(百濟)시대에는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있었는데 두 마을사이에 우물이 하나밖에 없는 관계로 항상 물이 부족하여 서로 다툼이 있어 사이가 좋지 않았다.

두 마을에는 평소 효성이 지극한 윗마을 부용(芙蓉)이라는 처녀와 아랫마을 사득(沙得)이라는 총각이 살았는데 다같이 늙으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었다 두 사람은 우물로 물을 길러 다니면서 서로가 정이 들어 사랑하게 되어 결혼까지 약속하게 된다. 그러던 중 신라(新羅)가 백제(百濟)를 침략하여 전쟁이벌어지고 사득(沙得) 이는 백제군으로 전쟁에 참여하여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만다. 그것도 모르는 부용(芙蓉)이는 사득(沙得)이가 그리우면 우물가에 가서 샘을 들여다보면서 사득(沙得)이를 그리워하며 매일 뒷산에 있는 선바위에 올라가 마을로 돌아오는 길목을 지켜보다 그만 바위에서 실신하여 떨어져 죽게 된다. 그 후 몇 해가 지난 어느 해 여름 극심한 가뭄으로 물이 없어 양쪽마을 사람들은 더욱 심한(沙得)이라는 사(沙)자를 넣어서 부사리(芙沙里)라는 마을 이름을 붙였고 이를 길이 보존하기위해 부사칠석놀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부사칠석놀이는 동네의 부흥과 화합을 하는 놀이문화로 발전 되었고 1938년까지 전통의 맥을 이어오다가 일제시대의 문화말살 정책과 6.25전쟁으로 중단되어 잊혀졌던 것을 1990년도에 마을 어르신들의 고증(考證)으로 다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그 동안 이 놀이의 발자취를 살

그 이후 1994년 10월부터 부사칠석놀이 보존회를 구성하여 매년 칠월칠석일과 대전광역시 한밭문화제 행사시 본 놀이를 재현하여 계승 보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후손에게 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西紀2007年 月 日

芙沙七夕놀이保存會

등이 기록되어있다.

 

 

 

한편 부사칠석놀이는 매년 10월 200여명의 주민들은 농악과 춤으로 연인(부용이와 사득)의 애듯한 사랑 제현는 시연회를 개최한다.

- 두 연인의 사랑을 재미있고 우스운 말로써 때로는 흥겨운 풍물로 200여명 한 몸처럼 민속전통놀이로 재현하고, 주민들을 하나로 만들었고 구경나온 온 주민들도 덩실덩실 춤으로 부사동민임을 표현했다.

 

○ 부사칠석놀이 내용은 상하부사리상면, 큰기맞절, 부사샘치기, 샘고사, 합궁놀이(오작교 놀이, 혼례식, 합궁), 놀이마당 순으로 이어진다.

○ 부사칠석놀이는 우리나라의 민속놀이 가운데 여름 세시명절과 관련된 놀이는 백중놀이 이외에 대체로 빈약한 편인데 부사칠석놀이가 이를 메워주는 놀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

- 이 놀이의 핵심은 선바위치성, 부사샘치기와 부용, 사득 합궁놀이 중심으로 형성된 놀이로서 ▲ 지명설화에 근원을 둔 마을 고유 향토 신앙에 기인하여 이것이 점차 여름 세시 풍속과 결부되어 놀이의 맥락에 반영 되었다. ▲ 두 마을 사람들이 만나는 오작교를 통해 화해와 상부상조의 뜻을 강조하고 부용, 사득

 

부사칠석놀이는 오랜 역사속에서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동네의 부흥과 화합을 하는 놀이문화로 발전되어 왔다

- 1938년까지 전통의 맥을 이어오다가 일제시대에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중단되었던 것을 8.15 광복 후 다시 계승 하였으나 6. 25 전쟁으로 인하여 잠시 중단되었던 것을 1990년도에 다시 재현하여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 그동안 놀이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1990년 이후 1992년도에는 대전직할시 중구 민속놀이로 선정되었고, 1993년 9월11일 대전직할시 민속예술 경연대회 최우수상과 1994년 10월21일 제 35회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최우수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 1994년 10월부터 현재까지 부사칠석놀이 보존회를 구성하여 매년 칠월칠석날과 10월이면 재현하여 계승 보존하고 있으며 후손에게 전승하고 있다.

 

부사동은 대전 보문산의 동편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이곳에서 전승된 부사 칠석놀이의 유래는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 구전에 의하여 백제시대 이 마을에는 윗말과 아랫말이 있었는데 두 마을은 고전평에 위치하여 항상 농사에 필요한 물은 몰론 가믐이 있으면 생활용수까지도 부족하여 다툼이있어 서로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윗 말에는 부용(芙蓉)이라는 예쁜 처녀 가 살고 있었고, 아랫말에는 사득이라는 총각이 살고 있었다.

- 그들은 모두 늙으신 흘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윗말과 아래말 사이에 있는 샘(부사샘)으로 물을 길러 다니다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까지 약속하였다.

그러나 신라가 백제를 침략하자 사득이는 백제군으로 전쟁터에 나갔다. 부용이는 사득이가 그리우면 우물가에 가서 샘을 드려다 보면서 사득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살았다. 전쟁이 끝나 같이 갔던 사람들은 돌아왔으나 사득이는 죽고 돌아오지 않았다. 부용이는 상심하여 슬픔에 빠졌고 몸도 야위었으나 날마다 사득이를 그리며 돌아오는 모습을 보기위해 뒷산(보문산)에 있는 선바위에 올라가서 윗마을로 오는 길목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부용이는 그만 실족하여 선바위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몇 해가 지난 어느해 여름 극심한 가뭄이 들어 샘물까지 말라 나오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은 물을 길러 먼 곳에 있는 황새샘(현 한밭종합운동장 주경기장)까지 가야만 했는데 이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다.

그러던 어느 날밤 윗말에 사는 좌상 노인의 꿈에 부용이가 나타나서 자기와 사득이의 영혼결혼식을 해주면 물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아랫말에 사는 좌상 노인의 꿈에도 사득이가 나타나 부용이가 윗말 노인에게 했던 것처럼 말하였다. 사흘 뒤인 철석날에 윗말, 아랫말 사람들은 부용이 와 사득이가 시

그 뒤 이샘을 윗말사람들은 부용샘, 아랫말 사람들은 사득이샘 이라고 부르다가 마침내는 두이름 첫 자를 따서 부사샘이라고 부르기 시작 하였고, 부사샘이 있는 동네라하여 윗말을 상부사리, 아랫말을 하부사리 라고 부렀다고 하며 오늘날에는 상, 하부사리라는 합쳐 부사동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뒤 매년 칠석날에 부용신을 아주 영험한 신으로 여겨 선바위에서 치성을 드리고 부사샘을 치고 고사를 지내고 부용이와 사득이의 합궁놀이를 한데서 그 유래를 찾는다.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은 부용이를 아주 영험한 신으로 여기고, 선바위에 치성을 드리며 무엇이든 이루어진다고 믿어 치성을 드리는 아낙이 많으며 이를 신성시하고 있고 도시발전 속에서도 부사샘터를 아직까지도 정성으로 보존하고 있다.

최근 들어 아들을 낳지 못하는 사람이 선바위에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많이 낳았다고 하여 언제부터인가 아들바위 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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