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반미 청년 사건 연루…우민화 정책 반대 신념에 반해

▲ 1988년 11월 8일 대전 지역 애국 결사대를 자칭하는 충남대학교와 목원대학교 학생 8명이 대전 지방 검찰청 공안 검사실을 기습 점거해 광주 학살과 5공 비리 척결, 전두환 씨 처벌을 요구했다. 이들 가운데는 허태정 대전시장도 포함돼 있다. 사진= MBC 뉴스 화면 캡처

[ 시티저널 허송빈 기자 ] 지역 반미 투쟁의 선봉이었던 허태정 대전시장의 청년 시절의 신념과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년이 지난 최근 미국에서 답을 찾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1988년 11월 8일 대전 지방 검찰청 3층 공안 검사실을 기습 점거한 대학생들이 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모두 연행됐다.

대전 지검을 기습 점거한 이들은 대전 지역 애국 결사대를 자칭하는 충남대학교와 목원대학교 대학생 8명으로 이 가운데 허 시장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점거 당시 대형 유리창을 깨고 집기를 부수면서 광주 학살과 5공 비리 척결, 전두환 씨를 처벌하라는 등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특히 당시 운동권에서는 전두환 씨가 대통령 당시 5공화국의 정책이었던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성(Sex)의 머리 글자를 딴 3S를 우민화라고 반대하기도 했다.

컬러 TV 방송 시작과 영화 검열 폐지, 각종 프로 스포츠 출범, 야간 통행 금지 폐지에 따른 야간 문화 발달 등이 바로 3S의 대표 사례다.

그런 허 시장이 최근 미국 출장에서 자본주의 꽃으로 평가 받는 프로 야구 구장 신축을 위해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메이저리그 구장을 보고 왔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할 수 밖에 없다.

청년 시절 반미와 독재 타도를 외치던 청년 허태정은 30년 만에 대전시장에 당선돼 전향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허 시장과 비슷한 시기 운동권 세대 가운데 상당 수가 정치권에 발을 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보면, 이들의 목표는 신념에 따른 이상 실현이 아니라 정권 획득에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 학창 시절 반미 청년회 활동을 하던 김경수 경남지사와 최근 나락에 떨어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나름대로의 정치적 입지를 다졌고, 조승래 의원(대전 유성을)도 국회에 입성하는 등 운동권의 현실 정치 참여는 계속되고 있다.

저작권자 © 시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