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 시기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구조에 옆면 규모 가장 큰 영향 미쳐

[ 시티저널 허송빈 기자 ] 문화재청이 세종시 전의면에 있는 세종시 유형 문화재인 비암사 극락보전(碑巖寺 極樂寶殿)을 보물로 지정했다.

세종시는 2012년 특별 자치시 승격 이후 건축 문화재로는 처음으로 비암사 극락 보전을 국가 지정 문화재 보물로 신청했고, 문화재 위원회에서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번에 보물로 지정했다.

비암사는 통일 신라 도선(道詵) 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 오고, 그 밖에도 여러 창건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673년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국보 제106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이 비암사에서 출토됐고, 지금까지 이 고장에서 비암사를 삼한고찰(三韓古刹)로 부르고 있어 사찰의 창건 시기는 고대로 거슬러 볼 수 있다.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 지붕으로 일반적인 측면 3칸형에서 벗어난 2칸형 불전이다. 전란 이후 사찰 경제를 축소한 사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공포의 구성은 크기에 따른 대첨차, 중첨차, 소첨차를 모두 사용한 특징을 보이며, 첨차를 배열한 방식과 내외부의 살미 모양 등에는 조선 중기 이후 다포 건축물에 보이는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극락보전의 가구 구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소는 옆면 규모다.

옆면이 2칸이면서 팔작집을 지으려다 보니 일반적인 상부 가구 구성으론 대응이 쉽지 않다. 보통 건물에서는 충량 1본을 뒀지만, 극락보전은 충량을 좌우 협칸에 각각 3본씩 설치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옆면 주칸이 긴 편으로 충량을 보조로 설치해 추녀에 걸리는 하중을 감당하려는 의도로 추측하고 있다. 

창호는 일반적인 조선 후기 불전 창호와는 차별성이 보인다.

앞쪽 창호는 문 얼굴을 4분할해 가운데 두 짝은 여닫이를 두고 문설주로 분리했다. 좌우에는 외짝 여닫이를 설치했다.

뒷쪽 창호는 이른바 영쌍창으로 분류되는 방식으로 쌍여닫이창의 중간에 설주를 세운 형태다.

건립 당시에 제작한 창호는 아니지만 뚜렷한 근거를 토대로 창호의 원형을 되살렸다는 점에서 극락보전의 건립 시기에 걸 맞는 외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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