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한국커피문화협회 사무처장] 커피가 처음 발견된 에티오피아와 세계 최초 커피의 생산국 예멘, 커피 문화의 꽃을 피운 터키제국은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용하는 언어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종교 면에서 는 이들 국가들이 이전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사실에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이슬람교 국가들에서 발견된 커피는 처음에는 각성효과를 일으킨다는 이유 때문에 코란에서 금기시하는 와인과 같은 음료로 여겨져 많은 이슬람교도들에게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이슬람 성지의 메카인 카바 신전을 관장하던 수피교의 수도승들이 알라신과 소통하는 매개체로 춤을 추면서 커피를 마시는 ‘세마 의식’을 진행하면서 커피는 이슬람권의 음료로 뿌리 깊게 자리를 잡았다. 또한 커피는 이슬람 승려들이 밤에 기도를 할 때 잠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해 마시던 음료였다.

이렇듯 이슬람교에서 자리 잡은 커피 음료가 그리스도교권으로 전해진 경로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들이 있다. 먼저 ‘십자군 전쟁’설이 있다. 1096년부터 1291년까지 약 200년간 치러진 십자군 전쟁 중에 오스만 제국에서 베네치아로 커피가 유입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커피가 실제로 오스만 제국에 전파된 시기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정정되어야 할 의견일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십자군 전쟁 중 베네치아 인들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던 시기에 전해졌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주장은 1615년에 커피가 베니스의 상인들과의 교역을 통해 콘스탄티노플에서 베네치아로 전파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도 의사이며 식물학자였던 프로스페로 알피니(Prospero Alpini : 1553~1617)가 베니스에서 라틴어로 발간한 그의 논문 ‘이집트의 식물(The Plant of Egypt)'에서 커피나무와 커피 음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다.

많은 학자들이 의견을 모으고 있는 유럽으로의 커피 전파 시기는 1519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셀렘 1세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난 후, 1520년부터 46년간 오스만 제국을 통치하던 시기에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1536년에 오스만 제국이 예멘을 점령한 후 커피 생두가 주요 수출품이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러한 정황들로 보아 오스만 제국이 대외 원정을 통해 유럽으로 활발히 진출하던 시기에 유럽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커피가 유럽으로 전해진 후 크게 번성하게 된 특별한 계기를 마련한 일화가 있다. 커피가 처음에 로마에 들어왔을 때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사제들은 커피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커피가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믿음을 위협한다고 믿으며 커피를 ‘이도교인들의 음료’이며, ‘악마의 음료’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일부 사제들이 1592년부터 1605년까지 당시의 교황이었던 ‘클레멘트 8세(Popee The Clement Ⅷ : 1535~1605)에게 찾아가 그리스도인들이 커피를 마시는 것을 금지하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하였다. 교황은 “그럼 내가 한번 마셔보고 판단을 하겠다.”라고 한 뒤 커피를 음용해보았다. 그런데 커피의 맛과 향이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한참을 생각한 교황은 “이렇게 좋은 음료를 이슬람교인들만 마시게 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시도록 해야 한다.”라고 선포하며 커피에 세례를 주었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일화가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당시 황제만큼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던 교황이 그의 신성한 권한으로 커피에 세례를 주고, 그리스도교의 음료로 선언하였다는 것은 커피가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사람에게 해롭지 않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증거가 되었다. 교황에게 세례를 받은 커피는 이슬람 국가에서 로마를 통해 그리스도 국가, 더 나아가 유럽세계에 널리 전파되었고 유럽인들에게 사랑받는 음료로 자리 잡도록 해주었다. 오늘 하루도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당시에 클레멘트 8세 교황이 커피에서 느꼈던 매혹적인 향과 맛을 마주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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