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률 학예연구사 대조 결과…검열 피해 초서 등으로 숨겨

[ 시티저널 허송빈 기자 ] 대전시 문화재종무과 양승률 학예 연구사가 1795년(정조 19년) 첫 간행된 전서와 이 때의 전서를 면밀히 대조·교정한 결과 그동안 알려진 오탈자가 아니라 일제의 출판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삭제된 글자를 초서 등으로 숨기는 방법 등을 통해 발간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수년 전부터 전서를 연구해 온 양 학예 연구사에 따르면 전서가 1930년 충무공 후손인 이만복과 대전에 거주했던 서장석이 주동이 돼 발간하려 했지만, 간행을 저지할 목적으로 전서의 주요 문구를 삭제하게 하는 등 일제의 검열과 노골적인 방해로 간행되지 못했고 4년 뒤인 1934년에야 간행됐다.

일제는 출판 검열에서 전서 내용 가운데 '왜추(倭酋)','왜적(倭賊)' 등과 같은 글자를 삭제하라는 처분을 내렸는데, 전서의 주요한 부분이 임진왜란과 관련된 왜와의 전쟁 관련이고 왜추와 왜적은 전서에서 매우 많이 보이는 기록이기 때문에 이것은 철저히 전서를 간행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편집자는 왜추(倭酋)에서 '추(酋)' 자와 왜적(倭賊)에서 '적(賊)' 자를 삭제하되 삭제된 글자 바로 앞 글자를 행서(行書)나 초서(草書)로 표기해 이들 글자가 생략된 사실을 독자가 읽는 중에 알아차릴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일부 소장본에서 발견한 '주의'라고 적힌 별지에서도 확인됐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전서 판권지에서 '소화(昭和)' 연도가 표기된 판권지를 뒤집어 놓은 것도 일제의 몰락을 암시하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라는게 양 연구사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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