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전현충원 관리과 전윤영

▲ 국립대전현충원 관리과 전윤영.

[ 시티저널 신유진 기자 ] 김구 선생님께서 자주 읊으셨다는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라는 글이 떠오른다.

즉 '눈 덮인 산길을 걸을 때 아무렇게나 걷지 말지니, 오늘 나의 발자국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리니'라는 뜻이다.

이 글귀를 읽으면 평생을 청렴으로 일관했던 역사 속 청백리가 떠오른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로 청렴을 꼽았다.

청렴은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을 뜻하며 공직자의 경우는 개인적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청렴은 옛날 청백리에서 유래했으며 청백리는 염근리(廉謹吏)라고도 하며, 고려시대에는 염리(廉吏)로 불렸다.

청귀(淸貴)한 관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품행이 단정하고 순결하며 자기 일신은 물론 가내까지도 청백하여 오천(汚賤)에 조종되지 않는 정신을 가진 관리를 말한다.

'청백리'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백비(白碑)이다. 백비는 조선시대 명종의 지시로 전남 장성 박수량의 무덤 앞에 세워져 있으며 글자 하나 없는 비석이다.

박수량은 조선시대 3대 청백리 중 한명으로 호조판서까지 역임하였으나 너무 검소하여 세상을 떠났을 때 상여 멜 돈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에 명종이 비를 하사하며 "그의 청렴함을 비에 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렴함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지 모르니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고 명해 백비가 세워지게 됐다.

전남 장성에 세워진 백비는 백성을 살찌우는 참다운 청백리 정신이 무엇인지 후세대에게 표상이 되고 있다.

맹사성이 좌의정 시절에 고향인 온양을 찾아갔을 때의 일화가 있다. 좌의정이 고향에 온다는 소식에 현감이 직접 마중을 나갔다. 길을 청소하고 포졸로 하여금 통행을 금지시키며 일일이 단속을 벌였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말이나 가마 탄 관리는 나타나지 않고 소를 탄 남루한 복장의 한 노인만 지나다가 포졸과 실랑이를 벌였다. 노인이 소 등에 탄 채 그냥 지나가려 하자 노인을 붙잡아 현감 앞으로 끌고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인이 바로 맹사성이었다. 참 소탈하고 검소한 분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황희 정승도 청렴의 표상이다. 하루는 세종대왕이 황희 정승의 집을 찾았는데 너무 초라했다. 사랑방 안에는 보료(坐垫) 대신 거적이 깔려 있었고 이불은 여러 가지 천으로 누덕누덕 기워져 있었다.

천장을 보니 빗물이 새서 얼룩이 져 있었다. 깜짝 놀란 세종대왕은 나라에서 비용을 내줄테니 당장 집과 세간을 마련토록 지시한다. 그러나 황희 정승은 "나라의 녹을 먹는 선비가 옷과 비바람을 막을 집이 있으면 그만입니다"라며 한사코 사양했다.

한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원동력은 공정한 경쟁이다. 공정한 경쟁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결과가 정해져 있는데 최선을 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정한 경쟁의 기본 조건인 청렴이 중요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속의 강국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 공직자가 앞장서서 공정하고 청렴한 사회를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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