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티저널 이명우 기자 ] 공자가 평생 성인의 모범으로 삼았던 주공은 어린 주성왕의 섭정으로 나라를 다스릴 때 한 번 씻으면 머리를 세 번 거머쥐고, 한 번 먹으면 세 번 음식을 뱉었다고 한다. 목욕이나 식사 중에도 사람이 찾아오면 만났다. 이런 자세가 '귀 기울이면 마음을 얻는다'는 이청득심(以聽得心)이 아닌가 싶다.

듣는다는 것은 싫은 얘기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소통과 경청에 대해 이 옛말만큼 지금의 세태를 잘 반영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되뇌면서 남의 말에 귀 기울인다는 것이 쉬운 것 같으면서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소통(疏通)이란, 단어 그대로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하고,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소통’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둘 이상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 소통이다.

우리는 흔히 ‘소통하는 리더가 필요하다.’ 또는 ‘서로 소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즉, 소통이란 것은 단지 주고받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이나 생각, 행동들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소통이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는 것에서 그쳤으면 우리는 소통하는 리더, 사회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 우리가 원하는 좋은 결과물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소통하는 사람들 모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서로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갈등을 겪을 것이다.

소통의 역할은 또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동시에 서로 가까워 지고 정도 생기게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 생각만 하고 다른 사람을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요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동등한 입장에 서서 서로를 이해하고 돌아보며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서로를 알아가고 정도 생기게 하는 것이 바로 소통이다.

충청지방우정청이 ‘정부 3.0’이라는 정부운영 패러다임까지 소홀하면서 소통을 하지 않는 것은 폐쇄적 관료주의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지난 20일 대전·충청지역 모 일간지 A기자가 충청지방우정청 청장실을 방문했다가 직원들에게 출입을 저지당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청장실을 출입하고자 하는 기자는 사전에 이유를 설명하고 허가를 받아야 출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시절 언론 개혁의 요체가 2가지였는데 하나는 기자실 폐쇄였고 다른 하나는 공무원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전자메일로 취재를 하라고 하는 간접취재 방식이었다. 결과는 두가지 모두 실패했다.

기자실 폐쇄는 패거리 언론을 향한 것이었고 간접취재는 부조리를 방지 한다는 차원이었지만 지지를 얻지 못했다. 특히 대면 취재를 금지하려한 것은 눈에 보이는 기자실 폐쇄보다 더 큰 비판을 받았다.

충청지방우정청이 과거 기자에 의해 피해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소통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 점차 축소되어 가는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이제 이청득심(以聽得心)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소통과 경청의 몸가짐으로 언제나 자신감 있는 조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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