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숭동의 세상 돋보기 ③ ] 바야흐로 '융합의 시대'다. 융합은 정보통신과 나노기술, 로봇과 생명공학 등 과학기술과 공학을 넘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라는 상반된 두 문화 간의 틈새를 없애는 돌파구로 재차 강조되고 있다.

▲ 한숭동 한국교통대학교 석좌교수
생물학과 건축학이 만나면 아프리카 대륙의 한가운데 에어컨이 없는 빌딩도 지을 수 있다는 말이 시사하듯, 오늘날 융합은 아주 새로운 지식 혹은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며 세상을 바꿔가고 있다.

융합은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상상,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만남 그리고 그것을 지원하는 문화적 여건이 제대로 갖춰져야 꽃을 피울 수 있다.

이탈리아는 로마제국 때부터 다양한 문명의 영향을 받아 풍요로운 문화를 꽃피었다. 문화혁명인 르네상스가 시작된 곳 역시 이탈리아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통로에 자리 잡은 지중해 한복판이라는 위치 때문에 자연스럽게 융합의 용광로가 됐다.

15세기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은 음악·미술·철학가 등 다방면의 학자를 모아 공동 작업을 후원했다. 여기에서부터 문화의 창조 역량이 커져 르네상스 시대를 맞게 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를 빛낸 거장의 상당수가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에 <군주론>을 헌정했으며, 갈릴레이는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고 자신을 후원해준 이의 이름을 따 '메디치의 별'이라 명명했다. 메디치가는 수많은 학자를 후원하며 세기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길이 남았다.

최근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올해부터 한국형 융합 인재교육(STEAM)이 도입된다. STEA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s, Mathematics)은 교과 간의 경계보다는 연계를 강조한다. 특히 다방면의 통합적인 지식을 습득해 문제 해결능력을 길러주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한국보다 한발 앞서 시작한 선진국에서는 융합교육이 더는 특별한 교육 방법이 아니다. 모든 수업에 새로운 교육 방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융합교육 강국들은 다양한 영역과 과목을 접목한 교육을 통해 미래 산업이 요구하는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의 STEM 교육은 실험적이긴 하지만, 많이 진전돼 왔다. 최근 지역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지만 Arts를 넣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당장 Art를 더 넣어 STEAM이 됐다.

융합 인재교육은 실사구시(實事求是) 교육이다. 이제는 단순한 물질적 융합 그 이상인 '통섭(Consilience)'의 시대다. 과학, 인문·사회, 예체능 등 학문의 경계를 깨고 학생의 창의력 향상과 교육의 효과를 어떻게 늘릴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사유(思惟)의 방법이다. 창의적 문제 해결능력, 상상력, 탐구능력, 논증능력 등이다.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콘텐츠가 아니라 프로세스다. 즉,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연속된 생각의 습관이다.

잡은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길러주어야 한다. '물고기'가 콘텐츠라면 '물고기 잡는 법'은 철학적으로 판단하는 방법, 접근하는 방법, 해결하는 방법이다. 직관을 논리와 통찰력으로 풀어내고, 감성을 체계적이고 이성적으로 풀어낼 수 있도록 '새 교육'이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교육비를 부담함에도 불구하고, 학문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하나 없는 처절하고 열악한 우리의 현실이다. '될성부른 떡잎'은 먼저 알아보는 사회·교육적 분위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춘추전국시대 백락이 천리마를 한눈에 알아본 것처럼, 스티브 잡스의 담임교사였던 이모진 힐이 잡스의 재능을 파악한 것처럼 말이다.

융합을 상징하는 인물로 손꼽히는 스티브 잡스는 21세기 초를 온통 애플의 신화로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인류 역사에 영향을 끼친 사과로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화가 폴 세잔의 사과를 꼽는다.그런데 애플社의 로고인 '한입 베어 먹은 모양의 사과'를 네 번째 사과로 추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일찍부터 낯선 곳에 여행가는 것을 좋아 했으며, 박물관과 미술관 등을 자주 찾았다. 그는 때로 워즈워스의 시를 읽으며 기술과 디자인의 융합을 추구했고, 과학과 인문학의 통찰을 산업에 접목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켰다.

대덕특구 등 전국 최고수준의 교육인프라를 보유한 대전은 창의융합교육을 선도하는 으뜸도시가 될 수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는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준 사과나무의 4대손이 명맥을 잇고 있다.

국공립, 사립, 대학 박물관·미술관도 광역시 중에서 서울 다음으로 제일 많다.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창조력, 지적 호기심과 감성을 키워주려면 이론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여행을 많이 가고 박물관을 자주 찾은 까닭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그곳이 키워줬기 때문이다.

다음 주면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가 영화로 나온다. 대전에서 창조의 상징인 ‘애플스쿨’로 기존의 학교들을 개조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혁신할 제2의 스티브 잡스를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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