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숭동 국립한국교통대학교 석좌교수

[ 한숭동의 세상돋보기 ① ] 지난 2일과 3일 연이틀 계속 시인을 만났다. 충청, 금강을 대표하는 나태주 시인과 섬진강을 대표하는 김용택 시인. 두 분은 평생을 초등학교 교단에 있으면서 자연의 언어를 보듬는 시인이기도 하다.

▲ 한숭동 한국교통대학교 석좌교수
전원 속의 시인이자 교사로 닮은꼴처럼 살아온 셈이다.

# 풀꽃 같은 시인, 나태주

나태주 시인은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느끼고 부대끼며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를 남긴 충남 부여출신 고 신동엽시인 이후 '금강시인'을 대표하는 중견이다.

지난 2일, 장마의 한 복판에서 시인을 만나러 공주에 갔다. 시인은 삼베적삼 차림에 자전거를 타고 와서 방문객을 맞았다. 인정 많은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푸근함이 느껴진다. 분명한 것은 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참 순해진다는 것이다.

세상의 풍파를 거치다보면 삶의 모습이 노정된다. 살아온 세월만큼 시인에게 삶은 늘 시의 모태가 된다. 세상의 언어들이 나태주 시인에게로 가면 동심을 익혀 오순도순 친화력을 가지게 된다. 마음에 동심을 들여놓고 평생을 살아온 맑은 마음의 시인이기 때문이다.

나태주시인은 평생 동안 잘했다고 여겨지는 일로 네 가지를 꼽는다고 한다. 첫째가 초등학교 선생님을 한 일이고, 둘째가 쉬지 않고 시를 쓴 일이고, 셋째가 한 번도 시골을 떠나지 않고 산일이고, 넷째가 아직도 자가용차를 갖지 않고 사는 일이라고 했다.

시인에게 있어 교직은 그의 삶을 탱글탱글하게 만들어주는 터전이었고, 시는 그가 살아가는 의미를 제공해준 정신적 샘물이었다.

나태주 시인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2007년 교장 퇴임을 앞두고 췌장염으로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며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났기 때문이다. 시인은 "결핍은 궁핍과 달리 절대 빈곤이 아니다"며 “달라이라마 행복론의 핵심은 탐욕의 반대가 비우는 무욕(無慾)이 아니라 만족” 임을 일러준다.

# 임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김용택시인!

다음날 섬진강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용택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대전의 한 초등학교를 찾았다.

시인은 첫마디를 유머로 열었다. "순창에서 가장 유명한 게 뭐죠" 고추장이라는 대답에 "그러면 임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치즈가 아니라 바로 저 김용택입니다." 일순간 모두가 큰 웃음으로 무장해제가 됐다.

시인은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덕치초등학교에서만 30여년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제자의 자녀를 다시 가르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또한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딱 엄마 아빠만큼만 공부했다는 것은 그중 하나다.

시인의 어머니는 한글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농사짓는 사람은 평생을 일하며 공부하죠. 경험에서 비롯된 학습이기 때문에 이렇게 배운 지식은 틀림없어요. '참나무 잎이 뒤집히면 3일 뒤에 비가 내린다', '꾀꼬리가 울 때 참깨를 갈고 보리타작을 할 때 토란을 심는다'는 말이 있는데, 관찰해보면 정말 그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죠. 그들은 과학자이며 철학자, 그리고 예술인이었습니다"고 말했다.

바람결, 햇살, 나뭇잎을 보고 자연의 변화를 읽고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에 시심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예전에 어머니께서 그냥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받아 적으면 시가 되고 소설이 되었다고 한다.

"행복한 사람은 평생을 공부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말한 시인은 "거실에 있는 양주병부터 치워야 한다. 예술적 감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행복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점을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김용택시인은 '교단일기'를 통해 "가르친다는 건 결국 자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사는 늘 자기를 수양하는 현장에 있는 셈이죠. 38년의 교사 생활 동안 저 역시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 이상으로 아이들한테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고 매듭짓는다.

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침으로써 성장하고, 제자는 배움으로써 진보한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지혜를 시인은 몸소 얻은 것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글로벌을 외치며 교실 속에 가두고 하나의 정답만을 요구하는 시험선수를 만들고 있는 교육현실에 겁을 내는 선생님. "나는 네게 줄 것이 없으니, 상으로 운동장에서 한번 업어주마" 라고 아이에게 말하는 선생님.

김용택 시인과 같은 스승을 만났던 아이들은 너무나 큰 축복이다. 시인과 짧은 만남은 큰 감동의 공명으로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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