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백 0 0 아저씨가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잠시 상태가 안 좋아져 입원해도 금방 호전되어 수일 내에 퇴원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2주가 넘어도 호전되지 않는다.

6년 전 아픈 다리를 어쩌지 못해 희망진료센타의 문을 두드렸을 때 다발성경화증이라는 진단은 그 아저씨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 병이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서서히 또는 급격하게 신경세포가 석회화되면서 몸이 굳어가다가는 끝내 사망에 이르는 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 않았던가, 다행스러운 것은 이 병의 진행 속도가 사람마다 제각각이어서 어떤 경우는 자연적인 수명이 다할 때까지 별다른 진행 없이 지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진단으로 절망의 날을 보내던 그에게 희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결과적으로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바로 소수의 경우에서만 나타나는 병의 진행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희망진료센타를 방문할 당시만 해도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던 몸이 보조적인 치료를 받고 정기적인 관리를 하면서 병의 진행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늦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 이상 병이 진행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가 희망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아저씨는 한 가닥 희망이 생기면서 지금까지는 포기하고 살았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계획의 1단계로 야베스공동체 세탁사업부에서 다림질을 하면서 장래 몸이 더 안 좋아지면 할 수 있는 일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몸의 질병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 사치로 여겨졌던 분에게 야베스공동체의 일자리는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아저씨는 열심히 다림질 기술을 배우고 돈을 모아 장차 몸이 더 안 좋아져 다리를 못 움직이게 될 때도 할 수 있는 유리공예 점포를 내는 것이었다. 이 아저씨는 유리공예점을 내겠다는 희망으로 자린고비처럼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어느 정도 돈도 모이고 다림질 기술도 손에 익어 작업장에서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는데 갑자기 다시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입원할 당시만 해도 예전처럼 잠시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일 뿐 금방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시간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자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인가? 아직은 아닌데....

이 아저씨의 병증이 갑자기 심해진 것은 음주가 원인이었다. 최근 몇 년간은 특별히 나빠지는 것도 없고 나름대로 미래를 위한 준비도 계획대로 잘 진행되니까 잠시 방심한 것이다. 병원에 입원하기 며칠 전 동료들과 기분 좋게 술을 마셨는데 그 다음 날부터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고 소변을 가릴 수 없어 입원하게 되었는데 경화증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분명 술이 원인임에도 병실에 누워있는 아저씨의 손을 꼭 잡아주는 나에게 애써 자신은 몇 잔 안마셨고 많이 마신 사람은 따로 있다면서 술이 병을 악화시킨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신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을 것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단지 나빠질 시점이 되어서 나빠진 것이지 전날 마신 술 때문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잠시 방심한 것에 대해 얼마나 후회했을까? 다행히 2주간의 치료를 받으면서 병세가 호전되어 얼마간 더 치료를 받고 퇴원을 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인생살이, 그러기에 희망을 갖는 것이 잘 하는 것인지 조차도 늘 되물으며 가슴 졸이며 살아가는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런 위태위태한 삶이기에 자신을 여는 것도, 주위에 감사하는 것도,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도 아저씨에게는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직 한 가지, 살아 있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자신 속에 자기을 가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이번 추수감사절에 벧엘을 만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야베스공동체에서 일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동료를 만난 것에 대한 감사를 고백했다. 6년 동안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본적이 없는 그가 살그머니 자신의 마음을 연 것이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날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고백한 것이다.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상황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자리로 옮겨왔음에도 그 자리가 희망의 자리인줄 몰라 불안해하던 그가 한 바탕 시련이 삶의 여유를 갖게 만든 것은 아닐까? 희망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를 단련시켜 끝내는 희망의 종착지에 도착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시련이란 놈을 숨겨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백 0 0 아저씨, 이번 일은 희망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저씨의 희망을 시샘한 시련이란 놈이 잠시 심술을 부린 것일 겁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열고자 숨겨놓은 섭리일 거예요. 용기 내시고 지금처럼 마음의 감사와 여유로 꼭 희망의 종착지에 도착하길 기도할께요.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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