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건 대전지방보훈청 등록담당

"어머니, 전 사람을 죽였습니다. 4명의 특공대원들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중략)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 대전지방보훈청 등록담당 이태건
이 글은 6·25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한 이우근씨가 수첩에 적은 글로 꼭 살아 돌아가겠다던 이씨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씨는 포항여중 앞 벌판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국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미래에 대한 행복한 꿈을 키워나가던 교실안의 학생들은 조국을 지키기를 위해 군번도 부여받지 못한 채 교복을 입고 전쟁 속으로 뛰어들었다.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하나로 총을 잡는 방법도 모른 채 전쟁에 참여하였다.

그들은 전쟁 기간 중 독립유격 제1대대, 제3보병사단 학도의용군 중대, 육군 정훈대대, 학도 포병의용대 등으로 조직돼 휴전 때까지 약 5만 명의 대원이 직접 전투에 참전했다. 또 27만 대원들이 후방 선무공작 등을 통해 군을 지원했으며, 그 중 7000여 명이 꽃다운 나이에 조국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국내 학도병 조직뿐만 아니라 재일 교포 민단 학생들로 구성된 재일 학도의용군 700여 명도 바다를 건너와 전후방 각지에서 맹활약했다.

이들 중 독립유격 제1대대 학도병 770명은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 펼쳐진 영덕상륙작전(1950년 9월 14일)에 참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끄는 한편 북한군 5사단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 제3보병사단 학도의용군 중대는 포항 지구 전투에서 11시간 동안 네 번이나 적의 파상공격을 처절하게 막아 냄으로써 포항지역을 사수했다.

우리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비극적이었던 6․25전쟁 속에서 많은 호국용사들이 있겠지만, 학도병들은 그 어린 손으로 가방과 책 대신 총을 잡고 조국의 멸공전선에 뛰어들어 산화되었다.

학도병, 그들은 현재 우리 아이들과는 다르게 전쟁이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 있었지만, 그들이 현재 우리의 아이들보다 체격이 좋고, 건강하거나 해서 전쟁에 참여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은 조국과 겨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한몸을 희생시켜서라도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당시 누군가의 아들들이었던 학도병들, 그리운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낯선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죽은 그들의 땀과 눈물, 희생을 가슴깊이 새겨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며 기리는 것은 그들이 지켜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고 우리 국민 모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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