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때가 되면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참다남 병원에 입원중인 유 0 0 이라는 젊은 친구의 전화다. 요즘 전화가 매일같이 오는 것은 면회를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나를 기다리는 전화다.

유 0 0 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오래전에 울안공동체에 입소하면서부터다. 그러나 그가 입소해서 퇴소할 때까지 특별히 기억할만한 일이 없었다. 단지 형과 함께 지내다가 형수가 자기를 싫어하고 자기 때문에 자주 부부싸움을 하는 것이 싫어서 가출해 입소했다는 것이 전부였고 가끔 술은 마셨지만 쉼터에서 큰 무리도 없이 지내다가 어느 날 훌쩍 떠났다. 그렇게 울안공동체를 퇴소하면서 그는 내 기억 속에서 거의 잊혀져갔었다.

그가 벧엘의집을 다시 찾게 된 것은 참다남 병원이라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뒤였다.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자신은 유 0 0 이라며 예전에 울안공동체에 입소한 적이 있는데 병원에서 자기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벧엘의집을 잘 아는 분이어서 한글 선생님께 내 핸드폰 번호를 알게 되어 전화를 한 것이란다.(사실 내가 잘 아는 지인 한 분이 알코올중독을 치료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 분이 유 0 0 에게 한글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궁금하기도 하고 전화까지 했으니 면회를 한 번 갔었다.

한글선생님을 통해 벧엘의집 근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으며, 그가 퇴소한 후 생겨난 야베스공동체에서 일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병명은 정신분열증과 알코올중독이었다. 그러기에 선뜻 그러자고 대답할 수 없었는데 벌써 원장선생님께도 퇴원해 야베스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장님과 상담한 후 결정하겠다고 하고는 원장님을 만났다.

원장님은 내가 자신을 찾아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자리였지만 벧엘의집 담당목사라면서 명함을 내밀자 유 0 0을 통해 내 예기를 들었고 내가 찾아온 이유도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 원장님도 정신분열증 치료에 노동이 도움이 된다는 것과 현재 상태 같으면 유 0 0 은 밤에는 병원에 입원해 있고 낮에는 야베스공동체에서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호자와 상의하여 결정하기로 했다.

얼마 후 그가 야베스공동체를 찾아왔다. 다행히 보호자였던 형도 낮에는 일을 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원장님의 말에 동의하여 일을 하러 온 것이란다. 이렇게 야베스공동체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몇 달이 지나 퇴원해서 집에서 출퇴근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 원장님의 말에 의하면 퇴원은 아직 무리라고 했는데 노동을 통해 많이 호전되어 퇴원했나? 약간은 의구심이 갔지만 그 후에도 꾸준히 일을 했기에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는 잊고 지냈었다.

약 1년 가까이 다녔을 즈음에 갑자기 직장을 그만둔 것이다. 이유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둔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어느 정도 돈이 생기면 무책임하게 떠나기에 병원에서 퇴원도 했고, 그 뒤에도 오랫동안 다녔기에 돈이 모아지니 꾀가 난 것이겠거니 하고 쉽게 넘겨 버렸다. 그런데 그가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다. 다시 입원하게 된 것이야 병이 재발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형과 불화가 원인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야베스공동체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만류했어야 했던 것은 아닌지, 퇴원한다고 했을 때 더 적극적으로 원장님과 상의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하기에 몇 판의 피자를 들고 찾아갔다. 다행히 건강해 보였다. 다시 좋아지면 야베스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하기에 그렇게 하자고 하고는 서둘러 병원을 나왔다. 그를 만나고 나오면서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그래도 한 때는 희망이 있었고 뭔가 길이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다시 그와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까? 이룰 수 없는 약속만 하는 것은 아닌가?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저작권자 © 시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