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수용체 ‘S-51’은 태어나면서부터 특별한 숙명을 가졌다. 암모니아 분자와 유독 잘 결합하는 자신의 특성 때문에 그는 자기 주인이 화장실에 가는 것을 어떤 후각수용체보다 민감하게 알아차렸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주인은 그의 골칫거리였다. 사실 그는 몰

그가 있는 곳은 엄지손톱만한 넓이의 후각상피였다. 이곳에서 1000개가 넘는 수용체가 오밀조밀 모여 살고 있었다. 수다쟁이 뇌 신경세포들은 시신경세포의 신호를 인용해 “유전자 풀의 3%를 차지하는 후각 유전자들이 각각 발현한 결과”라고 떠들어댔지만 그는 그저 어느날 정신차려보니 여기 있을 뿐이었다.

각각의 후각수용체는 자신과 잘 결합하는 냄새 분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대부분의 후각수용체는 자신의 짝을 좋아했다. S-51은 그 짝들이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몰랐지만, 단 한 가지만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자신과 붙는 짝이 지독히도 싫다는 사실을.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후각수용체계의 ‘반항아’였다.

주인이 무언가 먹을 때, 샤워를 할 때, 화장실에 갈 때마다 후각수용체들은 정신없이 바빴다. 주인은 호흡을 멈추지 않았고 냄새는 끊임없이 날아왔다. 후각수용체는 짝을 받아들인 뒤 재회를 기뻐할 새도 없이 바로 ‘후각망울’로 전기신호를 보냈다. 이 신호는 뇌로 전달돼 주인의 기억으로 바뀌는 듯했다. 그런데 같은 전기신호를 계속 보내면 뇌 신경세포는 간혹 “그만!”이라고 외쳤다. 지쳐서 더 이

가끔 후각수용체들이 쉴 때도 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후각상피 밑, 동굴이 진득한 액체(주인이 콧물이라고 부르는)로 찰 때다. “팽!” 소리와 함께 액체가 강한 바람에 밀려나가면 다시 몇몇 후각수용체들이 조금 바빠지지만, 한창 바쁠 때에 비하면 휴가라도 해도 좋을 정도였다. 주인은 괴로워하고, 뇌 신경세포도 “너희가 쉬니 음식 맛이 안 느껴져 우울하다”며 항의했지만 후각수용체들은 쉴 수 있

후각수용체 중에 30개 안팎은 늘 쉬고 있었다. 자신이 누굴 만나야 하는지, 왜 만나야 하는지 모르는 듯했다. 뇌 신경세포는 유전자의 이상이라고, 선천적으로 아픈 거니까 잘 해줘야 한다고 조용히 당부했다. 하지만 짝과 함께 보내는 알콩달콩한 시간을 좋아하는 몇몇 후각수용체는 쉬는 이들을 ‘솔로’라고 부르며 놀려댔다. 어느날 아주 진득한 누런색 액체가 동굴을 일주일 넘게 메웠을 때 솔로 하나가

주인은 ‘전자코’라는 것을 연구하고 있었다. S-51은 뇌 신경세포들끼리 수근거리는 말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신경세포들은 너무 수다스러워 짜증나지만 그들 덕분에 바깥의 소식을 알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전자코는 후각수용체가 죽는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들이 잘 모르는 냄새까지 식별하기 위한 물체인 듯했다.

이를 위해 주인은 계속 여러가지 냄새를 맡아댔다. 언제나 수다스러운 뇌 신경세포는 “냄새 분자가 전기와 결합하는 모습이 너희들 후각수용체가 짝을 만나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둥 “냄새 분자와 결합하면 색이 바뀌는 색소가 새로운 재료”라는 둥 떠들어댔다. 전자코를 연구하는 동안에도 주인은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S-51은 암모니아와 결합하는 전자코가 만들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주인이 만든 전자코는 11개의 센서를 가져 중국산 인삼과 고려인삼을 구별할 수 있었다. 물론 뇌 신경세포로부터 얻은 정보다. 하지만 이 전자코가 S-51의 일을 대체해주지는 않았다. 주인은 여전히 화장실에 자주 갔고 - 기술이 발전해도 변비는 해결 불가능이었다 - S-51은 여전히 암모니아를 떼내기 위해 애썼다. 주인이 늙어 다른 후각수용체들이 하나씩 기능을 잃어갈 때도 S-51은 건재했으며, 그래서 자신을 저주했다. 그러나 주인이 받아들이는 냄새가 전과 달라졌을 때, S-51은 무언가 변했음을 깨달았다. 주인은 더 이상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낡아버린 신경세포들은 삐걱거리며 “병원”이라는 단어를 전달했다. 톡 쏘는 느낌의 새로운 냄새들이 들어오며 아주 오랫동안 쉬고 있었던 후각수용체들 중 일부가 ‘커플’이 되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더딘 움직임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아주 맑고 투명한 바람만이 들어와 후각수용체들이 모두 휴식을 취하는 날이 이어지자 S-51은 암모니아가 조금은 그립다고 느꼈다.

며칠 뒤 주인이 조용히 숨을 거뒀을 때, 암모니아 분자 몇 개가 동굴로 들어왔다. 낯선 곳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어리고 작은 암모니아는 S-51의 생애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짝이었다. 늙고 지친 S-51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쁨에 찬 전기신호를 발했다. 반항적인 S-51의 최후는, 그랬다. (글: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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