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동지가 되었다. 1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에, 우리는 한 몸 의지할 곳 없이 한줌 햇빛을 그리워하며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삶을 놓아버린 우리의 이웃들을 추모한다. 거리엔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이 넘실거리고, 쇼윈도 안에는 온갖 상품이 넘쳐나며, 낡은 집들이 헐린 자리엔 마천루 같은 초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지만, 경쟁에서 지고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다.

사회에서는 이들을 노숙인이라 부른다. 그렇게 부름으로써 이들을 헤아릴 수 있는 특정집단으로 구분 짓는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는 금년 6월을 기준으로 1만 4천명 정도가 전국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으며, 그중 부랑인을 제외한 노숙인은 4천7백여명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정부는 노숙인과 사회소외계층에 대한 2010년도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하였으며, 노숙인 문제의 책임주체로서 장기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없이, 소극적인 예산지원과 거꾸로 가는 정책을 통해, 노숙인 문제를 소수의 개인들에 국한된 문제로 축소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사회에서 승자의 영광은 패자의 아픔을 전제로 얻어지는 것이다. 경쟁에서 패한 이들은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나 도태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힘겨운 삶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고, 구멍투성이 사회안전망은 이들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쪽방과 PC방, 찜질방을 맴돌며 예비노숙인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언제 집과 가정이 해체될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이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노숙인의 삶은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며, 경쟁사회의 필연적인 소산이다. 노숙인은 국외자가 아니며, 우리사회의 일면이자 슬픈 자화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승자독식의 세계에서 패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는 사회의 의무이다. 몇몇 시민단체나 종교단체의 봉사활동으로 치유하기에는 상처가 너무도 깊고 크다.

OECD 국가 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사회복지비용으로 성숙한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 4대강 사업에 쏟아 부을 삽질예산은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예산은 야속하게 잘라내는 국회는 누구를 위한 국회인가. 단 한명의 연고자라도 있으면 의료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여,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한 이가 사회로부터도 버림받게 만드는 정책을 펼쳐나가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오늘 살아있는 우리들은 거리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이들의 영정 앞에 사회의 양식을 골고루 나누지 못한 죄를 헤아리며 머리 숙인다. 또한 오늘의 추모행사가 단지 죽은 이들을 위한 진혼제로 끝나지 않고, 이러한 불행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다짐과 실천의 자리가 되도록 할 것이다. 그것이 먼저 떠나가신 이들에게 우리가 바칠 수 있는 최소한의 위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정부와 지역사회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노숙인 지원의 체계화를 위한 법률을 마련하라!
- 여성 노숙인에 대한 지원 대책을 강화하라!
- 노숙인에 대한 명의도용 범죄 피해를 해결하라!
- 노숙인에 대한 의료지원을 강화하라!
- 노숙인에 대한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라!
- 노숙인에 대한 안정적인 주거대책을 마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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