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지난 주 월요일 오후 진료소를 통해 지역의 2, 3차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몇몇 환자분들의 문병을 다니던 중이였습니다. 선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세분의 문병을 마치고 나오는 중에 야베스공동체에서 일하고 계신 전 0 0님께서 교통사고로 크게

야베스공동체 수반팀에서 일하고 계신 전 0 0님은 야베스공동체가 생긴 이래 한 번의 낙오 없이 3년이 넘는 시간동안 묵묵히 일해 온 분으로 벧엘의집에서도 대표적 자활 케이스로 이야기 되는 분인데 이날도 오전에는 야베스공동체에서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식사 후 지병인 하지정맥으로 충남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직장으로 복귀하다 사고를 당하신 것이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보니 커튼이 쳐

내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 CT, X-선 촬영 등 기본적인 검사는 모두 마친 상태로 다행히 뇌출혈, 뇌손상, 경추 골절 등 우려했던 상황은 아니었다. 정형외과 적으로도 사고 부위의 타박상 이외의 특별한 증상은 없어 환자가 안정이 되면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자동차와 사람이 부딪친 교통사고이기에 당장은 아무 문제가 없다가도 휴유증이 나타날 수 있고 아저씨도 온몸의 통증

하지만 전 0 0 아저씨는 입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친 보호자가 없어 입원 보증서를 작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친 보호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멀리에 있어 금방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우리가 동의서를 쓰고, 보증을 하겠으니 입원시키자고 하였지만 병원 측은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 하며 입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내가 일하는 곳은 희망진료센터라는 곳으로 보호자가 없는 여러

대전의 어떤 병원에서도 입원 시 친 보호자의 동의를 강제로 요구하는 경우는 없었다. 지금까지 이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친 보호자가 바로 연락이 되거나 빨리 와서 입원 동의서를 작성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다. 이번처럼 교통사고가 났을 경우, 환자의 신원이 파악되지 않는 경우,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 법에서 정한 친 보호자가 없을 때 등등 수없이 많은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지금의 논리라면 모두 입원이 불가능한 것이다. 입원 동의서라는 서식 자체가 일종의 지불보증각서/연대보증서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3자의 동의로도 충분히 법적인 효력이 발생하는 것인데 왜 친 보호자의 동의만을 요구하는 것일까? 정말 얼마의 본인부담금과 병실 차액의 손실을 걱정해 친 보호자의 동의를 이야기 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S병원은 여러 가지 행정적 모순을 지니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기초생활수급권 환자의 불합리한 입원 절차이다. 일반적인 의료보험 환자들은 1층 로비의 입/퇴원 창구에서 입원 동의서를 작성하게 되면 바로 입원하게 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수급권 환자들의 경우 약제실 앞에 있는 원무과 사무실에서 또 한 번 동의서를 작성해야 한다. 두 번의 동의서 작성, 한 번 더 동의서를 작성 하는 것

지난 3월25일 수요 정기진료시간에는 칼에 자상을 입은 유 0 0님이 오셔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좌측 정수리 부근은 칼에 찔린 상처가 있었고, 목덜미 부근은 칼로 그어진 상처가 길게 나 있었으며, 좌측 귀는 절반이상이 잘려져 너덜너덜 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각 부위별로 수십 바늘 이상 을 꿰맸다. 일반 상처도 아니고 칼에 찔린 상처이기에 왜 병원에 가지 않았냐고 물으니 그 아저씨가 하시는 말씀은 구급차

이뿐만 아니라 보호자가 없거나 의료수급권자들에게는 입원을 하려면 입원 보증금이라는 것을 받기도 한다. 당장 아파서 입원을 해야 하지만 입원 보증금을 요구하는 입원 절차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입원을 포기한다.

의료란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는 인간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영역 중 하나이다. 의료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신성한 영역이다. 그런데 오늘 의료기관들은 의료라는 신성한 영역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의료는 자본주의 논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작년 3월 대전 공공병원 설립을 위한 시민대토론회에서 한 토론자가 우리나라 공공병원(시립병원)이 매년 평균 약 40억의 적자를 낸다고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비단 s병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의료기관들이 의료라는 공공재를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킨 현 시점에서 다른 종합병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라기는 의료의 공공성이 회복되어 아픈 사람은 누구든지 경제적인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의 공공성이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저작권자 © 시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