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 시기 전형적 축성 기법 보여…초기 철기 시대 유물 발견 학술적 가치

▲ 대전시 기념물 제10호인 보문산성은 백제 말 신라와의 전투가 치열하던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인근에 있는 산성들과 쉽게 연락을 취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 시티저널 허송빈 기자 ] 보문산성은 대전 남쪽 산지 최고봉인 보문산(寶文山) 시루봉에서 동쪽으로 약 800m 떨어진 표고 402m의 봉우리에 위치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산성의 평면은 남북 방향으로 길쭉한 장방형(長方形)이며, 길이는 280m에 이른다. 서쪽과 남쪽에 2곳의 문지(門址)가 있다.

1990년 발굴 조사를 거쳐 1991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성벽을 쌓은 기법은 입면 방형의 다듬은 성 돌을 상하 축단(築段)이 평행하도록 쌓은 전형적인 백제 산성 축성법이다.
경사면 내측의 지반에 기대 바깥 부분을 돌로 덧대어 쌓았는데, 석축부의 하단이 상부보다 좁고 깊게 해 마치 지반을 향한 쐐기와 같은 형상이다.

이런 기법은 501년에 축조한 부여 임천의 성흥산성(聖興山城)을 시작으로 부여 나성(羅城) 등 사비 시기의 전형적인 축성 기법이다.

성내에서 출토된 토기 가운데 사비 시기 6세기 말~7세기 전반경으로 비정되는 백제 토기가 있어 이 성의 축조 시점을 알 수 있다.

이 곳에서는 동쪽으로 식장산(食藏山) 연봉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북동쪽으로는 계족 산지의 능선이 잘 조망된다.

대부분의 산성들이 교통로에 근접 배치된 점을 비춰 볼 때 보문산성은 그렇지 않은 특징이 있다.

계족산지 동남 지맥에 위치한 질현성(迭峴城)·능성(陵城)·갈현성(葛峴城)·삼정동산성(三丁洞山城) 등의 일선(一線)에서는 사정성(沙井城) 등의 보문산 서남 능선의 방어선을 직접 조망할 수 없다.

또 계현산성(鷄峴山城)과 비파산성(琵琶山城) 등지에서도 사정성 방어선을 직접 관찰하기 어렵다.

아마도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들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보문산 402m 고지에 산성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백제 이후 나말여초(羅末麗初) 시기와 고려 시대에도 산성으로 활용했음을 확인했다. 이 무렵에는 남문을 폐쇄하고, 서문 역시 문 폭을 좁혔던 것으로 드러났다.

동성벽의 하단부에서는 초기 철기 시대의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가 발견돼 학술적으로 중요하며, 여기에서 약 800m 떨어진 서남쪽에 위치하는 시루봉 아래 속칭 까치 고개에서도 같은 시기의 세형 동검이 발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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