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마지막까지 항일전을 전개한 우리민족의 독립군

대전지방보훈청 기획계장 이동희
폭염으로 지루했던 여름과 계속되는 집중호우도 어느덧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 초입에서 9월의 달력을 유심히 쳐다보면 추석을 전후하여 빨간 숫자가 유난히 많이 눈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추석에만 관심을 가질 뿐 여타 숫자에는 관심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9월에는 우리가 기억해야할 아주 특별한 날이 들어있다. 9.17일 바로 우리 국군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광복군 창설일이 바로 이날이다.

광복군의 창설계획은 1919년 임정수립 당시 정부가 공포한 군사조직법에 연원을 두고 있으나 1936년을 전후하여 광복군 창설이 본격화 되어 1940년 9.17일 충칭 가릉빈관에서 광복군총사령부 성립 전례를 개최 광복군 창설을 공표했으며, 이청천 총사령관과 이범석 참모장이 임명되었다.

광복군은 일제에 대항하여 국군양성 및 훈련을 통해 궁극적으로 국내 진공작전을 추진하여 조국의 자주독립을 쟁취하는데 목적을 두었으나 처음부터 많은 제약과 한계를 지니고 출발하였다.

광복군은 먼저 중국에서 활동했던 한인 군사조직의 통일을 추진하여. 1941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광복군의 제5지대로 편입되고 1942년 7월에는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의 총부 및 1지대가 광복군 1지대로 재편성됐다.

이로써 광복군은 중국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인 무장부대의 통합조직이 되었으며, 1945년 5월부터 미국 정보기관인 OSS의 특수훈련을 받아 국내침투를 준비했으나 출동 명령 바로 직전 일제가 항복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광복군은 비록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임시정부의 법통을 토대로 창설된 군대로 마지막까지 항일전을 전개한 우리민족의 독립군이었다.

그러나 해방이후 어수선한 정치적 현상에서 국군의 중심역할을 하지 못하고 해산된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광복군의 창설 일에 즈음하여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동안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한번 추스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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