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통계청 자료를 통해 한국의 고령화 추이를 살펴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95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8.4%이며 향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30년에는 1,269만명, 인구의 20.6%로서 초고령 사회(65세 인구비율 20%)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0년 867개였던 요양병원은 2022년에 1,434개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폐업한 병원을 고려하더라도 짧은 기간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는 것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국소방안전원 김두열
한국소방안전원 김두열

 그러나 연이은 요양병원 화재로 많은 어르신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줄지어 발생하고 있다. 2014년 5월에 발생한 전남 장성의 한 요양병원에서의 화재사고로 인해 2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2018년 1월에는 경남 밀양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해 환자를 비롯해 의사, 간호사 등 47명이 사망하고, 147명이 부상을 당했다. 또한 2019년 9월 김포에서는 2명이 사망하고, 47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위 사고는 요양병원의 특성상 입원환자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노약자가 대부분이며 피난 시스템과 피난 보조인력의 부재로 피해를 키웠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강화되는 제도에 발맞춰 건축물 구조적인 안전을 확보함과 동시에 실질적 피난에 대한 노력이 병행된다면 장성, 밀양, 김포와 같은  대형 참사의 재발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화재의 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에서는 특정소방대상물의 관계인과 소방안전관리대상물의 소방안전관리자의 업무로 연 1회 이상 소화, 통보, 피난 등의 훈련을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소방훈련을 형식적인 성가신 일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병원은 지금까지 아무일 없었는데’라는 안일함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소방안전관리자에 의한 자체적인 소방훈련 및 교육이 실질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요양병원 내 고령의 입원환자를 피난훈련에 참여토록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화재초기 골든타임을 놓치고, 비상대응인력의 부재로 많은 사상자를 낳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제 거동이 불가한 환자의 대피를 연습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최대한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시행되어야 한다. 

 일례로 2023년 11월 구미 강남병원에서는 연기가 전기 트레이 내부 배선을 타고 상층부로 확산되었으나 옥내소화전설비를 사용하여 화재피해를 저감시켰으며, 자동화재탐지설비와 자동화재속보설비가 정상 동작하여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였다. 또한 독립보행 가능 환자와 보행이 불가한 환자를 구분해 대피 담당자를 매칭하여 신속히 건물 외부 및 옥상으로 대피하였기 때문에 연기를 흡입한 피해 이외에는 큰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근무자에 대한 주기적인 가상화재 소방훈련이 빛을 발한 대표적인 우수사례다.

 요양병원 관리자에 의한 자체적인 훈련이 어렵다면 제도적인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소방기본법」 제17조에서는 소방대원에 의한 교육·훈련 대상을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의 영유아, 유아, 학생 및 장애인복지시설에 거주하거나 이용하는 장애인에 한정하고 있어 요양병원에서의 피난약자인 노인이 제외되어 있다. 따라서 이와 동등한 수준의 대피훈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요양병원 입원환자 및 근무인력을 대상으로 한 소방관서 합동훈련 의무사항을 포함하는 등의 개정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 대부분의 요양병원에 피난기구로 구조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실효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구조대는 형태에 따라 ‘경사강하식 구조대’와 ‘수직강하식 구조대’로 구분된다. 경사강하식 구조대의 경우 지상에서 구조대의 하부까지 전개 및 결속 과정의 시간이 지연될 수 있으며, 일정 경사도를 유지하기 위해 설치장소에 많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건물 주변에 공지가 확보된 경우에 한하여 설치되고 있다. 

 수직강하식 구조대는 포대의 협착 작용에 의한 마찰로 감속하는 방식과 나선상으로 감속하는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전자의 경우 일정 간격마다 고무 밴드로 제작된 협축부와 사용자 간의 마찰로 하강속도를 조절한다. 그러나 협축부는 일반적인 성인이 빠져나갈 수 있는 크기로 제작되기 때문에 체격이 왜소한 노인이 속도조절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또한 구조대 내부로 지상까지 이동하는 동안에는 외부 조력을 받지 못하므로 수직 낙하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피난기구의 화재안전기술기준」에서는 노유자시설의 경우 스스로 피난이 불가한 자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조대의 적응성을 3층까지로 제한하고 있는 반면, 요양병원은 의료시설로 분류되어 10층까지 구조대 설치가 가능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요양병원 이용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층별 피난기구의 적응성 기준을 노유자시설과 통일하고, 수직강하식구조대의 설치를 제한하는 등의 기준 제정의 필요성을 나타낸다. 

 점차 고령화 되어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리 모두의 부모, 형제가 노년을 요양병원에서 보내게 될 수 있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요양병원의 안전에 대한 관심은 결코 다른 일에 밀려 후순위가 될 수 없다. 노인이 지니고 있는 취약성을 고려하여 요양병원에서의 소방안전관리는 다른 건축물과 차별화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단순히 법규와 제도를 변경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해당 시설 관리자의 성숙한 안전의식이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요양병원은 ‘효 실천’, ‘생명존중’, ‘믿음’, ‘정성’ 등 환자 중심의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을 소개한다. 단순 홍보용 슬로건이 아닌 병원의 비전을 말한 것이라면, 최신 의료기기와 전문 의료진이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듯이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소방안전관리로 우리의 부모님을 지켜주실 것을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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