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고고학 지표 조사서…다른 벽돌 무덤 가능성 배제 어려워

[ 시티저널 허송빈 기자 ] 문화재청 국립 부여 문화재 연구소가 백제 웅진 도읍기 왕실 묘역인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새로운 고분의 유존 가능성을 다수 확인했다.

이번 조사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중장기 학술 조사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첫 정밀 현황 조사로 기초 자료 조사·현장 조사·과학적 담사와 측량 조사 등 크게 3단계로 나눠 진행했다.

올 2~3월 문헌 조사와 사진 조사를 동반한 실내 조사를 실시했고, 4월 고고학 지표 조사에서 고분 41기의 유존 가능성을 추가로 확인했다.

신라·가야와 달리 백제는 지하에 매장 시설을 두고 봉분을 크지 않게 조성했기 때문에 지표면에서 고분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봉분과 석재 등 고분의 흔적, 입지 특성, 지형 분석 등으로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다.

6월부터는 국립 문화재 연구소 고고 연구실과 함께 무령왕릉 정비 구간의 지하 물리 탐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일제 강점기 이후 위치를 알 수 없었던 7~9호와 29호분의 흔적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고분의 위치를 표시한 사진 자료와 현재 촬영한 사진 자료를 비교·검토해 확보한 기초 자료를 바탕으로 이들 고분의 현재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조사 과정에서 지표면에서 수습한 중방(中方)명 벽돌도 주목할 만하다.

무령왕릉과 6호분은 틀로 찍어낸 소성(燒成) 벽돌을 쌓아 터널 형태의 무덤방을 만들었는데, 아치형 구조를 시공하기 위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벽돌을 제작했다. 대부분 동전과 연꽃 등 장식용 문양을 넣었다.

문양이 없는 대신 대방(大方), 중방, 중(中), 급사(急使) 등 글자를 압출(壓出)한 벽돌도 일부 확인했으며, 이 글씨는 벽돌을 사용한 위치 등 쓰임새를 의미한다는 견해가 많다.  

무령왕릉에 사용한 모두 7927점의 벽돌 가운데 중방명 벽돌은 30점에 불과하다.

벽돌의 크기와 글자의 위치로 볼 때 이번 수습품은 긴 벽면에서 창문 모양을 장식한 8점과 유사하다.

이번에 수습한 벽돌의 발견 위치가 벽돌 무덤인 무령왕릉의 남쪽 80m 지점이고, 일제 강점기에 보고된 벽돌 무덤인 17호분의 추정 위치와도 70m 이상 떨어져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벽돌을 발견한 일대에 또 다른 벽돌 무덤이 있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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