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시국선언...성직·수도자 등 500여명 촛불집회 참가

9일 천주교 대전교구 대흥동주교좌성당에서 열린 시국선언과 미사.

 

<대전시티저널 김종연·홍석인 기자>미국산 쇠고기 협상과 대운하 정책 등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종교계에서도 나서 시간이 갈수록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한국천주교회 대전교구 유흥식 주교로부터 임명받아 출범한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김종기 신부, 이하 정평위)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과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한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천주교 대전교구 정평위는 9일 오후 대흥동주교좌 성당에서 사제 85명과 수도자 70여명, 신자 400여명 등 총 500여명이 모여 시국선언과 ‘인간, 자연의 생존권과 창조질서 보존을 위한 미사’를 갖고, 이어 대전역까지 거리행진을 한 뒤 촛불문화제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였다.

 

사제단과 수도자 그리고 신자들이 미사 후 대전역까지 ‘평화의 침묵 행렬’을 하고 있다.

 

“하느님 뜻 거스른 법은 양심 구속할 힘 못 가져”

 

정평위는 ‘나는 양들의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통해 “어느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가장 닮은 피조물인 인간의 생명을 해칠 권리가 없다”고 전제한 뒤 “국가의 법과 제도가 윤리적 질서가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입법되거나 선언된다면, 그것은 양심을 구속할 힘을 갖지 못한다고 교황 요한 23세가 말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들은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허용됨으로서 국민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국민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일어났다”며 “미봉책만 난무할 뿐 국민생명을 우선적으로 보호할 의지를 정부에게서 찾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비난했다.

 

또 대운하 사업에 대해서는 “하느님이 주신 아름다운 자연 생명을 위협하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 사업도 국민들의 혼란을 부추긴다”며 “정부는 물류에서 관광, 다시 치수와 하천정비로 계속 명분을 바꿔가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故이병렬씨(42세)의 빈소. 이씨는 전북 전주코아백화점 앞에서 지난 달 25일 저녁 6시경 시민들에게 광우병 위험 쇠고기 반대 전단지를 나눠준 후 몸에 시너를 끼얹고 분신했다. 전주예수병원에서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후송 후 치료를 받다가 지난 8일 밤 10시부터

 

이어 “인간의 과도한 개발과 환경파괴로 인한 재앙이 일상화 돼가는 현실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되고, 경제성마저 의심되는 무리한 사업을 국민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 밀실추진하려 한다”며 “미국은 대운하와 유사한 플로리다 운하 공사 후 홍수로 이천 여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를 당했다”고 전했다.

 

정평위는 “국가의 통치자 또한 하느님에게서 위임받은 공동선을 증진시킬 통치 행위에 있어 생명권의 존중은 필수적인 사항”이라며 “쇠고기 사태와 대운하 사업에서 볼 수 있듯, 이것이 추진되면 피해를 볼 대상은 대부분 사회적, 생태적 약자이고 선택권이 없는 학생이나 군인,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이라고 주장했다.

 

'근조'리본과 초를 나눠주는 정왜스님(왼쪽)과 전영우 신부(오른쪽).

 

이들은 “경제살리기라는 명분 아래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고 민주주의의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성과주의에 물든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국민과 자연의 기본적 생명권과 행복권이 묻혀버리는 것은 아니냐”고 우려하면서 광우병 쇠고기 수입중단과 한반도 대운하 사업백지화를 위한 국민들의 촛불집회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동참하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밝혔다.

 

또, 이와 더불어 의지를 모으고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대전교구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창조질서보전’, ‘인간과 자연의 생명권 수호’를 위한 미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먹거리 무너지면 다른 것도 무너질 것”

 

한국순교복자수녀회 황영주 수녀
이들은 미사 후 대흥동 성당에서 대전역까지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평화의 침묵 행렬’을 벌였고, 이후 저녁7시부터는 촛불 문화제에 참가해 이명박 정권의 퇴진과 쇠고기 재협상, 대운하 전면 백지화를 외쳤다.

 

지난해 예수수도회에 입회한 김문영 수녀(세례명 : 세라피나)는 “입회 후 4년 동안은 밖에 나올 수 없으나 안에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 나와 함께 기도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면서 “뉴스 기사들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가 무너진다면 다른 모든 것이 다 무너질 것이다. 이곳에 나와서 촛불문화제를 하는 것을 보며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가진다”고 말했

 

한국순교복자수녀회 황영주 수녀(아가다, 소화유치원장)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유치원교사 신분으로서 급식문제가 너무나 걱정된다”며 “이런 걱정은 국산인지 수입산인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고, 우리 아이들에게 만큼은 좋은 고기를 먹이고 싶다”고 소망을 전했다.

 

또 “정부의 대운하 추진에 대해서도 적극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힌 뒤 “대운하를 추진한 독일도 실패했으며, 다시 그 전의 상태로 돌리려고 노력 중인데 정부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대전교구청 한광석 홍보국장 신부(마리요셉)는 “신분상(성직자이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 표명이 어렵지만, 문제가 많다는 것은 인정한다”면서 “인간의 생명은 가장 고귀한 가치이기 때문에 생명을 담보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없다. 가톨릭에서는 낙태 및 배아복제 문제를 반대해 왔고,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자연역시 생명임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故이병렬씨를 위해 묵념하는 바오로딸 수도회 수녀들.

 

“마음 하나 돼, 청와대 태울 수 있을 것”

 

자유발언에서는 종교지도자들과 교사, 장애우까지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들로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공세리 성당 오남한 신부(루가, 충남 아산)는 “우리는 모두 행복을 바라고, 식탁 또한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전제한 뒤 “21년전 우리는 뜨거운 감정을 가지고, 대학생부터 넥타이 부대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고, 그 자리에는 故이한열 열사가 있었다”고 민주화운동을 회상하면서 “국민은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는 이명박은 어쩌면 머리가 2메가바이트인 것 같

 

불교계를 대표해 나온 정왜 스님은 “국민들이 다 싫다는 대운하를 만들어 경상도공화국, 전라도 공화국, 충청도공화국을 만들려 하고 있다”면서 “대한민국은 주식회사가 아니다. 회사의 CEO는 국민의 대통령이 될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촛불이 등불이 돼 청와대를 태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수수도회 수련생 수녀들

 

예수수도회의 봉막달레나 수녀는 “수녀이다 보니 운동권의 목소리처럼 크게 낼 수 없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다”고 조심스레 말문을 연 뒤 “하느님은 자연스러운 것에 축복을 준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서 되돌아가는 길을 선택한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면서 “촛불 하나만 있어도 희망은 있다. 다른 초에 불을 붙여 가면 우리 모두의 마음은 희망이 돼 청와대를 태울 수

 

사람들과 함께 함성을 지르는 정의평화위원회 김종기 위원장 신부(맨 오른쪽).

 

“이명박-박성효, 자격조차 없어”

 

이날 촛불문화제에서는 <대전시티저널>의 9일자 보도된 <박성효 대전시장, “교민주장 일리 있다”>는 기사를 접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시민들의 비난 섞인 목소리도 높게 일었다.

 

사회자가 박 시장이 9일 오전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 내용을 시민들에게 설명했고, 시민들은 ‘박성효는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촛불 밝힌 수녀들(왼쪽)과 박현주(29), 현정(26)자매 (오른쪽).

 

휠체어에 몸을 맡긴 한울야학 조성배 교장(41세, 서구 월평동)은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가)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라는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수돗물과 가스의 민영화로 우리를 결국 굶어 죽게 하려 한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공약에서 장애인 복지의 정책을 추진한다고 했으나, 복지 마인드가 전혀 없어 보인다. 대전시장 역시 마찬가지이며, 둘 다 (대통령, 시장)자격조차 없어 보인다”고 비난키도 했다.

 

한편, 평소 정치적인 발언을 자제하던 천주교가 80여명의 사제단이 주축이 돼 나선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로 지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불을 지폈던 사제단(원주교구)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서고 있어 그 파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6월 항쟁 21주년을 맞는 10일 저녁에는 천주교 뿐 아니라, 개신교와 대전지역 대학생, 시민 등 1만명의 인파가 대전역으로 몰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도청으로 향하는 1천여명의 시민들.

 





성명서 원문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성명서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과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한 시국선언)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성경은 모든 생명의 주인이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고 알려줍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가장 닮은 피조물인 인간의 생명을 해칠 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교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생명을 위한 종교

  세상의 모든 권력과 권위도 궁극적으로 창조주이자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가톨릭교회가 참된 자유를 가지고 신앙을 선포하고, 사회에 관한 교리를 가르치며, 인간의 전인적 구원을 위해 국가의 정치질서에 관한 일에 대해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


  2008년 6월 한국사회는 국민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어두운 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8일, 우리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한 협상을 미국 정부와 타결하였습니다. 이 협상으로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허용됨으로써 국민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은 부위까지 수입하기로 한 점을 보면 국민의 생명을 등한시하는 자세에서 여전히 변화된 게 없습니다. 미봉책만 난무할 뿐 국민 생명을 우선적으로 보호할 의지를 정부에게서 찾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또한 하느님이 주신 아름다운 자연 생명을 위협하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 사업도 국민들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정부는 물류에서 관광으로, 다시 치수와 하천정비로 계속 명분을 바꿔가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과도한 개발과 환경파괴로 인한 재앙이 일


  모든 인간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보살필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생명과 건강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침해하였을 때 그 잘못에 대해서는 큰 책임이 뒤따르게 됩니다. 하물며 국가의 통치자 또한 하느님에게서 위임받은 공동선

  또한 국가는 특별히 약자들과 빈자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부유한 이들은 자기 방어 능력이 있지만, 빈곤한 이들은 그렇지 못하므로 배려와 관심을 가지고 돌볼 책임이 국가에 있습니다. 쇠고기 사태와 대운하 사업에서 볼 수 있듯, 이것이 추진되면 피해를 볼 대상은 대부분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 아래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고 민주주의의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성과주의에 물든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국민과 자연의 기본적 생명권과 행복권이 묻혀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더불어 돈이면 모든 잘못까지 덮어버릴 수 있다는 윤리적 불감증에 빠진 우리 자신을 뼈저리게 반성합니다. 국민을 부자로 만들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국민이 존중받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해 국민과 함께 고민하면서 마침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끄는 민족의 지도자로 거듭나는 이명박 정부가 되기를 바라며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촉구합니다.


  첫째,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검역주권을 포기하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하여 얻을 수 있는 국익이란 더 이상 없다.


  둘째,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창조질서를 보존하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반하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완전히 백지화해야 한다.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중단과 한반도 대운하 사업 백지화를 위한 국민들의 촛불 집회를 전적으로 지지하며 이에 동참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의지를 모으고 요구를 전달하기 위하여 대전교구 사제, 수도자, 신자들은 매주 수요일 미사

                                                                    2008년 6월 9일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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