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고도에 그윽한 군자 향

▲ 제14회 부여서동연꽃축제가 열리는 궁남지
[ 시티저널 이명우 기자 ] 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지속되는 토요일 오전 11시, 백제의 영화가 숨 쉬는 고도 부여는 도심속에 비치는 아스팔트위 아지랑이처럼 흐늘거리고 있었다. 정적이 흐른다고 할 만큼 조용한 도심을 막 벋어나자 차량 통행조차 어려운 궁남지에 도착했다. 부여가 왜 그리 조용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부여군민은 물론 외지에서 찾아온 인파가 밀려 온 시내를 비어 놓고 이곳에 몰려 있던 것일까. 궁 남쪽의 연못(궁남지)에는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며 서로 뽐내듯 만개한 연꽃들이 울긋불긋한 인파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소산 남쪽 나지막한 화지산 자락과 궁남지를 배경으로 지난 8일부터 17일까지 10일간 열리는 제 14회 부여서동연꽃축제. 다양한 볼거리와 힐링을 겸한 먹거리, 풍성한 이벤트 그리고 수백만송이 연꽃이 연출하는 장관은 이 축제를 여름철을 대표하는 축제로 떠오르게 한다.

이 기간 궁남지에선 수백만 송이의 연꽃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으로 빛을 발할 때 소슬 바람이라도 밀려올라치면 은은한 연향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 궁남지의 야경
실로 전혀 상상치 못했던 오감이 즐거운 여름 한낮의 즐거움을 이곳 궁남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부여서동연꽃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더위가 한풀 꺾인 야간에 펼쳐지는 수채화 같은 풍경이다.

수만개의 조명아래 말쑥하게 차려입고 고개를 길게 빼어들며 저마다의 미모를 겨루는 연꽃들에게서 그 옛날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이 묻어난다.

낯선 이국땅으로 사랑하는 님을 찾아 떠난 선화공주의 두려움과 설레임이 이곳에서 피어나는 듯 하다. 원근에서 찾아든 젊은 커플들 역시 이곳에서 또 다른 사랑의 맹세로 오랜 추억을 심고 있다.

궁남지의 연꽃은 경기도 시흥의 관곡지나 전북 김제 하소백련, 전남 무안의 회산백련지, 전주 덕진 연못에 비해 연혁은 짧지만 부여군이 축제를 위해 탄탄하게 준비한 덕에 고도의 정취와 자연 속에서 열리는 축제의 진수를 웅변한다.

12만평의 넓은 연못을 배경으로 순백의 백련과 형형색색의 홍련, 아직은 모두 자리를 잡지는 않았지만 기묘한 자태를 보여주는 가시연이 무려 한 시간 이상 궁남지 주변에 마련 된 둘레 관람길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 카누체험
또한 축제장 곳곳에 마련된 쉼터는 넓은 연꽃 호수를 쉬엄쉬엄 둘러보기에 손색이 없다. 그리고 호수의 물길을 따라 연꽃 속을 누비는 카누 체험은 오랫동안 기억될 추억의 한 장이 되기에 충분하다.

겨울의 매화가 오상고절을 갖춘 지조의 꽃이라면 연꽃은 오상의 덕을 군자의 꽃이다.

▲ 군자의 10가지 덕을 갖춘 연꽃의 자태
연꽃을 꽃 중의 군자로 대접하는 것은 10덕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제염오(離諸染汚)라 해서 진흙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불여악구(不與惡俱)라 해서 오물이 머무르지 않으며 계향충만(戒香充滿)이라 해서 연꽃이 피면 시궁창 냄새가 사라진다. 또 어느 곳에 있어도 본체청정(本體淸淨)을 유지하고 모양이 둥글고 원만해 면상희이(面相喜怡)라 하며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해 유연불삽(柔軟不澁)의 특성을 보여준다. 연꽃이 꿈에 보이면 길몽이라 해서 견자개길(見者皆吉)이요, 꽃이 피면 열매를 맺으니 개부구족(開敷具足)하고 활짝 핀 꽃에선 성숙청정(成熟淸淨)을 느끼고 날 때부터 다른 것과 같지 않음이 생이유상(生已有想)이다.

중국 북송시대의 학자 주무숙(周茂叔)은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을 이렇게 찬양했다. “나는 연꽃을 사랑한다. 진흙 속에서 태어났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고, 속이 비어 사심(私心)이 없고, 가지가 뻗지 않아 흔들림이 없다. 그윽한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높은 품격은 누구도 업신여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연은 꽃 가운데 군자(花中君子)라 한다.”

연꽃은 옛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유교에서는 순결과 세속을 초월한 상징으로, 민간에서는 연생귀자(連生貴子)의 구복적인 상징으로 여겨졌다. 연생귀자란 빠른 시기에 아들을 연이어 얻는다는 의미로, 연꽃이 꽃과 열매가 동시(花果同時)에 생장한데서 온 것이다.

연꽃은 고대 인도에서는 여성의 생식능력, 다산, 생명창조의 상징물이었다. 중국에서는 생식 번영의 꽃으로 사랑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 벽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태양신을 숭배하던 고대 이집트에서 연꽃은 태양의 상징으로 신성시됐다. 기원전 2700년경 왕의 분묘 벽면 돌조각에 연꽃이 새겨져 있고 국왕의 대관식에는 파피루스와 함께 신에게 바쳐지는 꽃이었다.

하지만 연꽃은 아무래도 불교와 인연이 깊다. ‘묘법연화경’이란 이름은 연꽃의 청정과 불염(不染)의 성질을 비유해 붙여진 이름이고 모든 사찰에는 연꽃 그림이 반드시 들어간다.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다가 말없이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자 가섭존자만이 미소로 답했다는 ‘염화시중’의 미소와 ‘이심전심’ 역시 연꽃이 없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말이다.

수련과의 다년생 수생식물인 연꽃은 뿌리가 물 아래 흙속에 있으며 줄기가 길게 자라 물 위에 올라와 꽃과 잎이 핀다. 물 깊이에 따라 줄기 길이가 조절되며 줄기를 잘라보면 구멍이 꽤 큰 통기(通氣)조직이 잘 발달돼 있다. 연못 뿐 아니라 논이나 습지 등의 습지에서도 잘 자라며 요즘은 집에서도 연꽃을 화분에 심어 물속에 담궈 두고 여름내 즐기기도 한다. 뿌리, 잎, 열매 등 버릴 것이 없고 최근에는 연잎차, 연잎밥, 연엽주 등이 웰빙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곳 궁남지에도 연잎향이 그득한 연화 연잎밥이 오가는 이들의 식욕을 돋우고 있다. 백제의 옛 음식을 재현하려 노력하는 부여밥상연구회 회원들이 내놓은 음식들은 이곳이 백제의 고도로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맛의 고장이라는 새로운 트랜드를 선보인다.

‘구드래 돌쌈밥’, ‘부여연정식’, ‘사비아구’ , ‘서동 한우’, ‘서동선화사랑밥’, ‘연갈비정식’ 등 백제의 전설과 지명이 정겨운 음식들은 부여의 지역 향기가 진득이 배어나올 듯 한데 시간이 촉박해 일일이 시식을 하지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쉽다.

또 다른 한켠에서 만나는 부여 청년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창업한 청년몰 ‘청년시럽’에서 달콤한 청춘스토리를 전한다. 부여 청년상인 12팀이 저마다의 개성을 살려 창업한 청년몰 ‘청년시럽’은 위축되어 가던 재래시장에 청년 일자리 창출을 선도할 청년 상인들을 양성해 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들의 아이디어와 도전 정신이라면 부여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장래를 기대할만 하지 않을까.

한여름 폭염 속에 열리는 부여서동연꽃축제에 연인원 200만 명 이상의 구름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부여군과 군민들의 탄탄한 준비도 있었지만 부여군청 홍보실 직원들의 노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유네스코의 유적으로 지정된 부여라는 공간적 배경을 연꽃이라는 볼거리로 엮어낸 이들은 반복적인 방송에의 노출로 다른 연꽃 축제보다 연혁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연꽃축제들을 제치고 국내 최대의 연꽃축제로 자리매김 시키고 있다.

이처럼 축제를 준비한 사람들과 부여의 젊은이들,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친절함으로 무장한 상인들, 내 고장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봉사자들, 그리고 묵묵히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한 홍보실 직원과 같은 공직자들의 땀과 수고가 하나가 된 부여서동연꽃축제. 이번 주말엔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낭만과 사랑이 영그는 부여 궁남지로 연꽃 향기 맡으러 가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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