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휴대전화는 더 이상 전화기가 아니다. 화상전화, 인터넷 단말기, TV, MP3, 카메라 등 손안에 들어가는 크기지만 없는 기능이 없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이는 반도체칩의 집적도가 크게 높아진 덕택이다. 실제로 반도체 업체들은 2000년부터 매년 집적도를 2배씩 높인 칩을 내놓고 있다.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회사들은 회로의 선폭을 수십 nm(나노미터, 1nm=1억분의 1m) 수준까지 좁혔다. 

   

하지만 회로의 선폭을 줄이는 데 걸림돌이 있다. 반도체 칩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수가 늘어날수록 발생하는 열의 양도 급격히 많아지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나 노트북 컴퓨터를 오래 쓰면 뜨거워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래 트랜지스터는 3개의 전극(게이트, 소스, 드레인)을 갖고 있는데, 전압에 따라서 게이트가 소스에서 드레인으로 전류를 흘려주거나 끊어주는 스위치 기능을 한다. 그런데 집적도가 높아져 회로의 선폭이 좁아지면 게이트가 완벽한 스위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즉 스위치를 꺼도 전자의 이동, 즉 누설되는 전류가 많아진다는 의미다. 이렇게 누설되는 전류의 양이 많아질수록 반도체칩에서 발생하는 열

 

반도체칩에서 발생하는 열은 상상을 초월한다. 2007년 반도체칩에서 발생하는 열은 이미 제곱센티미터 당 100W를 넘어 섰고, 2010년쯤이면 지금의 10배가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60W 전구를 만져 본 경험이 있다면 이것이 얼마나 뜨거운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반도체칩에서 나는 열은 단순히 전자제품을 사용할 때 뜨거워서 불편한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제품의 성능을 크게 떨어뜨리고 수명을 단축시키게 된다. 열이 발생하면 트랜지스터의 저항이 커져 집적회로에 흐르는 전류의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오작동을 일으킨다. 인텔이 펜티엄4 이상의 중앙 처리 장치를 장착할 수 있는 메인 보드에 온도 측정 장치를 3개나 내장한 것도 열에 대한 ‘두려

 

때문에 집적도를 높이려면 반드시 열을 잡아야 한다. 처음에는 공기와 접촉면을 늘리는 방식이 사용됐다. 인텔은 1990년대 초반 ‘80386’과 ‘80486’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셋을 만들면서 울퉁불퉁한 요철 표면을 만들어 열의 발산을 돕도록 했다. 하지만 칩의 집적도가 크게 높아진 펜티엄 모델부터는 작은 선풍기(팬)를 다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팬 때문에 컴퓨터를 키면 ‘윙~’하고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생긴다.

 

애플(Apple)이나 히타치(Hitachi)는 부동액을 섞은 물을 순환시켜 CPU(중앙연산장치) 등에서 발생하는 열을 방출시키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방식은 팬이 필요 없기 때문에 소음이 적다. 냉각수가 수 mm의 알루미늄 파이프를 따라 돌며 칩에서 발생하는 열을 빼앗아 밖으로 뽑아내는 ‘에어컨 방식’도 사용된다. 이 방식은 효율이 높기는 하지만 냉각수를 회전시키기 위해서는 모세관에 냉매를 집어넣는 펌프가 추가

칩에 냉각수를 직접 뿌리는 다소 엽기적인 방식이 등장하기도 했다. 미국 휴렛 패커드(Hewlett-Packard)사가 2002년 발표한 잉크젯 프린터 노즐로 칩에 직접 물을 뿌리는 ‘샤워식 냉각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이 방식은 냉각효과는 좋지만 칩 배선을 방수 처리해야하는 단점이 있다.

 

칩 자체에 냉각장치를 달자는 아이디어도 있다. 미국 퍼듀대 서레시 갈리멜라 교수팀이 제시한 ‘이온풍력엔진’은 칩 스스로 냉각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칩 표면 양쪽 끝에 전극을 부착해 전류가 흐르게 하면 전극 주변의 자유전자가 공기를 이루는 분자와 충돌한다. 공기 분자들은 (+), (-)로 이온화되고, 이 이온들이 이동하면서 바람을 일으켜 칩을 냉각한다.

 

이 밖에도 칩 표면에 냉각수나 냉각용 액체금속이 흘러가는 미세 파이프를 만드는 방법이 스탠퍼드대, 조지아공대, 퍼듀대 등에서 연구되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열의 발생을 줄이는 반도체칩을 설계하자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기존의 냉각 시스템에 비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트랜지스터의 설계를 바꿔 전자의 움직임을 더 확실하게 차단하자는 시도인데 ‘2중 게이트’와 ‘전면 게이트’ 설계가 대표적이다.

 

2중 게이트는 1989년 일본 히타치사가 처음 내놓은 것으로 트랜지스터의 소스에서 드레인으로 전류가 흐르는 실리콘 통로 아래위에 게이트를 2중으로 배치시키는 방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장피에르 콜린즈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게이트 전극이 전류통로 전면을 감싸는 구조인 전면 게이트 트랜지스터를 설계했다. 이렇게 되면 누설전류가 줄어들어 트랜지스터에서 발생하는 열을 효과적으로 차단할수 있다.

 

반도체 회로기판 위에서는 열을 잡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손안에 쏙 들어가는 편리한 정보통신기기 수요가 지속되는 한, 과학자와 열의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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