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안위를 늘 걱정하고 애태운다는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
이 글은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체포돼 중국 여순 감옥에서 1910년 3월 자신을 취조했던 야스오카 세이시로 검찰관에게 왼쪽 장인을 찍어서 준 글이다. 그 당시 안중근 의사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낸 글이기도 하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우리나라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북만주 시찰을 명목으로 러시아 코코체프와 열차에서 회담을 마친 뒤 하얼빈역에서 내려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환영군중으로 가는 순간 권총을 쏘아 3발을 명중 처단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등을 차례로 쓰러뜨린 뒤 당당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안중근 의사가 이룬 이 의거는 우리 한민족의 정기를 되살리는 동시에 일제의 대륙침략 만행을 응징하면서 세계만방에 알리는 쾌거(快擧)를 이룬 사건이었다.

당시 이 사건은 중국인들이 10년 내 이루지 못할 일을 한국인이 하루에 해냈다고 할 정도였다.

안중근 의사는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에 묻어두었다가 우리의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 봉환작업은 1986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유해가 묻힌 곳으로 추정되던 여순 감옥 뒤편의 공동묘지에 이미 일반건물이 들어선 데다 안중근 의사 묘소의 이장 여부에 대한 확인이 불가능하고 관련 자료가 사라져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안중근 의사가 그 토록 바라던 고국으로 모셔 와야 하며 그것이 우리 후손들의 의무이며 책무일 것이다.

10.26일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침략의 원흉을 처단한지 올해로 98년이 되는 날이다. 뜻 깊은 날을 맞아 안중근 의사의 나라를 걱정하고 애태우는 마음을 계승하여 국력을 결집, 세계속의 강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전지방보훈청 기획계장 이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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