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퐁츠낭의 어느 마을을 가서 진료를 하든지 상황은 비슷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큰 마을이냐 작은 마을이냐의 차이뿐 마을마다 가옥구조나 생활수준 등 생활상은 거의 엇비슷하다. 그런데 똘로마을 생명길 교회에서 진료할 때의 일이다. 이 마을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 마을은 캄퐁츠낭 도청소재지에서 프놈펜으로 올라오는 길에 있었던 마을로 아시안 하이웨이 국도에서 가까운 마을이었다.

한참 진료가 진행되고 있는데 교회 마당에 교복을 입은 아이들 20-30여명이 한 가운데 선생님 듯한 분을 중심으로 빙 둘러 손을 잡고 노래도 하고 앉았다 일어서기도 하는 등 무슨 수업을 진행하는 듯 보였다. 그렇지 않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평일 오전이면 아이들이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역을 통해 아이들에게 구충제를 먹일 것을 제안했다. 그러자 선생님인 듯 보이는 분이 두 손을 모으면서 감사하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에게 구충제를 먹이기로 하고는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고는 한 사람씩 현장에서 구충제를 복용시켰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오전 진료를 마치고 교회에서 제공해주는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오후 진료를 시작했다. 이날 진료가 이번 일정의 마지막이었기에 프놈펜까지 가려면 조금 일찍 진료를 마쳐야 하기에 예약된 환자를 다 진료하기 위해서는 속도를 내야 했다. 하지만 약국이 문제였다.

진료 봉사 팀에서 가장 고된 자리가 약국이다. 전기가 없기에 약 포장기도 없이 건전지로 쓸 수 있는 비닐 포장기로 약포지를 봉합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약사발이 깨지는 바람에 어린아이의 경우 정제를 가루로 빻아야 하는데 임시방편으로 미니 돌절구를 구해서 사용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분주하게 약을 포장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달려와 캄보디아어로 뭐라고 한다. 그래서 통역에게 그 아이가 말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 아이가 와서는 항문에서 무슨 벌레가 나온다는 것이란다.

항문에서 벌레가 나왔다는 말에 재차 물었다. 항문에서 무슨 벌레가 나왔다는 것이냐? 그 아이는 항문에서 흰 벌레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 말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구충제는 기생충을 녹이기 때문에 대변에 기생충이 섞여 나오는 경우가 없다는데 항문에서 벌레가 나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기생충이 아닌가?
구충제를 먹고 하루도 안지나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이상하지만 기생충이 산채로 나온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70년대 같으면 시골 장날에 약장수들이 기생충이 많을 것 같은 아이를 불러 약을 먹이고는 기생충이 나오는 것을 연출하기도 했었지만 우리가 시골 약장수도 아닌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인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기생충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그 아이의 말을 빌리자면 항문에서 벌레가 기어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캄보디아 농촌의 현실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 줄 수 있는 환경도 안 되고 그나마 있는 영양분도 기생충에게 빼앗긴다면 당연히 얼굴에는 마른버짐이 피고 골격은 작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구충제라도 먹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양분을 기생충에게 빼앗기지 않고 성장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봉사팀에게 또 하나의 목표를 심어준 사건이었다. 가능하면 구충제도 준비해서 구충제를 먹이자던 소극적인 자세에서 구충제 보급을 중요한 활동 목표로 삼게 된 것이다. 치료만큼이나 중요한 구충제 보급을 통해 깜퐁츠낭의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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