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쯤이면 반가운 손님들이 벧엘의집을 방문한다. 그 주인공들은 내동에 위치한 롯데아파트 주민들이다. 이들이 벧엘과 인연을 맺은 것도 벌써 10여년 가까이 되니 벧엘의집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의 방문 목적은 매년 연말에 아파트 주민들이 각 가정에서 이웃을 돕기 위해 쌀을 모아 그것을 전달하러 오는 것이다. ‘좀도리쌀 나누기 운동’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운동을 통해 모아진 쌀을 처음에는 내동 인근의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다가 10여년 전 참여하는 주민들이 많아지고 모아진 쌀이 남게 되어, 당시 롯데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 희망진료센터에 봉사하던 서울가정의원의 이문희 선생님으로부터 벧엘의집을 소개받고 쪽방주민들에게 쌀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자원봉사나 나눔 활동을 10여년 가까이 꾸준하게 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는 않다. 처음에는 열의를 가지고 시작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처음 가졌던 마음도 변하고 열정도 식어버리고 참여하는 사람도 적어지면서 시들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늘 하는 말이 한 번 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꾸준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했었다.

그렇게 꾸준한 활동을 강조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대전역에서 벧엘의집 사역을 시작할 때, IMF직후여서 그런지 대전역에는 거리급식을 하는 단체나 교회들이 참 많았다. 어떤 때는 같은 시간에 두 단체 이상이 나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급식을 하는 경우도 있어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식어서 그런지 대전역 거리급식을 하는 단체나 기관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처음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갖가지 선물도 함께 준비하고, 봉사인원도 넘칠 정도로 많이 나오면서 대전역 거리급식은 자신들이 책임질 것처럼 하다가는 어느 순간 그만둔다는 말도 없이 슬그머니 그만둔다. 소위 당사자들이라고 하는 노숙인들도 이런 행동에 적잖은 혼돈과 서운함을 감추지 않는다. 아니 서운함을 넘어 분노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전역에서 천막을 치며 사역을 시작할 당시의 일이다. 대전역 광! 장 한 귀퉁이에 매일 저녁 천막 두 동을 쳤었는데, 하루는 만취한 한 아저씨가 천막을 발로 차서 무너뜨리는 것이다. 다시 세우면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면 무너뜨려 끝내는 천막을 치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하루를 대전역에 나가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 중에 자신이 천막을 무너뜨린 것은 교회에 대한 분노였다는 것이다. 이 분은 전과가 많은 분이었는데 교도소에 있을 때 전도를 하러 많은 분들이 온다는 것이다. 그 때 자신도 회개하고 신앙을 갖게 되어 출소 후 잘 살아보려고 찾아가면 자신을 경계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전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잘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온다간다 말도 없이 그만 둔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가증스럽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다.

자신의 편의와 생각에 따라 봉사를 하는 것은 도움을 주는 것 보다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가 더욱 많다. 그래서 봉사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할 것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내 주위에는 10년을 넘게 꾸준히 봉사나 나눔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희망진료센터 의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희망진료센터의 역사와 같이한다. 때론 희망진료센터 운영방식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고, 잘못된 점도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것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바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향한 마음일 것이다. 몸이 아프지만 치료 받을 수 없는 조건 때문에 희망진료소를 찾아오는 그 사람들 때문에 때론 자신의 생각과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어도 그것을 넘어 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롯데 아파트의 좀도리쌀 나누기도 마찬가지이다. 노숙인 하면 사회적으로도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고, 또 쌀이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이곳 보다 더 의미 ! 있는 곳이 많고 등등 그만둘 명분은 많이 있음에도 10여년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희망진료센터를 찾는 이들도 이제 1월이 되면 롯데 아파트의 쌀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함께 한 길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에는 같은 비전과 생각으로 동행을 시작하지만 가다보면 옆 사람의 단점이 보이고, 의견의 차이가 생기고, 방식의 차이가 생기면서 갈등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그만둘 명분을 찾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만둔다. 그러나 이런 갈등과 어려움을 넘어서면 평생 한 길을 동행할 수 있을 것이다. 10여년을 함께한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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