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세월을 마음의 종이위로 확장시키며 촉각마저 자극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경주엑스포공원 내 엑스포문화센터 전시실에서 '닥종이 스님' 영담 작품전을 마련합니다.

출가인으로 한지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영담스님은 맥이 끊어진 전통종이 6종을 재현해 낸 닥종이(전통한지) 장인이며, 닥종이를 미술작품으로 승화시킨 닥종이 작가입니다. 정혜진기자가 자세한 소식 전합니다.

흔히들 닥종이 하면 인형을 떠올리지만, 그는 닥종이를 화선지 삼아 천연염료를 이용해 채색하고 변색과 탈색, 혹은 번짐과 스밈 등 다양한 물성과 시간에 따라 흐르는 변화를 형상으로 드러냅니다.

작업에 쓰이는 한지는 자신이 손수 만든 것으로 그가 살고 있는 경북 청도의 감을 이용합니다.
감물은 진한 갈색의 강한 착색력을 지닌 천연 염료로 녹슨 쇠를 연상시키는 듯한 발색효과가 한지와 조화를 이뤄 또 다른 양상을 띠게 되며, 그것은 그의 작업실이 위치한 청도의 산과 물, 바람과 햇살이 어우러지면서 이루어 낸 결과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천연 닥종이와 천연 염료들에 어울어 진 ‘연리지’, ‘바이로차나’, ‘헝클어진 심장’ 등 150여점의 작품이 선보입니다.

번지듯 말 듯 한 습윤한 번짐효과와 강렬한 색채, 고목 뿌리나 바위에 낀 이끼 같은 신비한 음영효과는 닥종이의 천년세월을 우리 마음의 종이위로 확장시키며 촉각마저 자극시킵니다.

미술사학 박사 여명스님은 "약재를 감싼 종이는 약탕관의 뚜껑으로 쓰이며 육신을 치유하는 방편이었지만 영담의 종이는 자연의 원천적 염료를 결합시켜 감동을 주는 마음의 약재이며, 그것은 작가가 추구하는 수행자 삶의 목표인 깨달음의 자유자재한 삶과 다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HBC뉴스 정혜진입니다.

한국문화에서의 닥종이는 고유의 장인적 위상을 넘어서 작가만의 미학적 관점으로 새로운 현대적 예술형식의 가능성을 모색해왔습니다. 다양한 시도와 테크닉으로 질기고 부드럽고 은은한 종이 빛에 표현해 낸 색채와 형상은 30년 종이 인생의 예술적 성과와 깊이를 엿보게 합니다.

이번전시회는 의도하지 않고 인위적인 것을 피하며 가장 자연적인 것을 표현하려 했다는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오랫동안 종이와 함께 해 온 긴 시간들의 체험이 고스란히 표출돼 있는 훌륭한 전시회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가 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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