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지난 주간은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한겨울 추위보다 더 매섭더니 이번 주는 평년기온을 웃돌아 3월말 기온을 나타내고 있다.

3월은 꽃피는 춘삼월이라 해서 봄이 오는 길목에 있는 달로 희망과 기대로 가득찬 달이기도 하다.

3월이 되면 농부는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대지를 어루만지며 풍년을 기원하며 농사 준비를 하고, 온 대지는 황량함을 벗어 버리고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 파릇파릇한 새 생명을 움 띄우고, 산골짜기에선 겨우내 얼었던 계곡물이 녹으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봄의 소리를 낸다.

봄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우리 마음도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들이 녹아내리며 뭔가 모를 희망과 기대로 들뜨게 마련이다. 그러나 올해는 자연은 봄의 소식을 알려도 우리 역사에는 봄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얼마 전 대학졸업자들의 초임을 깎아 신규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던 공기업들의 임원급 연봉은 수 억원을 웃돈다는 기사를 보면서 조금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기득권 세력의 행태를 보며 정말이지 이 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부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여기에 장단이라도 맞추는지 전경련은 대기업 임원들의 연봉은 그대로 놔두고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은 삭감하여 인턴사원은 늘리겠다니 정말이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 같아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정치권은 어떤가? MB악법들을 날치기로 상정하고 통과시키겠다고 엄포를 놓는 모습이 정말 국민의 고통을 헤아리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명분과 이권에만 혈안이 되어 국민은 굶든 죽든 상관하지 않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역사의 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느 시인은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며 빼앗긴 들에 봄을 간절히 기대했다.

우리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봄은 오지 않을 듯 보이지만 자연의 봄이 혹한의 겨울을 넘어 생명을 움틔우는 것처럼 우리 역사의 봄도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 기운을 우리 삶의 현장에서 난 느끼고 있다. 비록 정부는 부자들을 위한 정부이기를 고집하고, 정치권은 자신들의 명분과 이권만을 위해 이전투구하고, 부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지라도 비록 힘없고 가진 것은 없을지라도 서로를 헤아리고 함께 연대해 이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거룩한 연대, 함께함이 바로 봄이 오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비록 절망할 수밖에 없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도 내일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오늘을 묵묵히 버티며 살아가는 나의 가족이 바로 역사의 봄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이라고 믿는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듯 절망과 나태의 터널을 지나 힘들어도 견뎌보겠다며 고된 일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떠난 곰 아저씨, 한쪽 팔에 기브스를 했지만 여전히 야베스를 향해 출근하는 아저씨, 밤새 일하고도 주일 아침이면 비록 교회에서 졸더라도 교회로 향하는 김군, 이번만은 술을 끊어보겠다고 다짐한 이 아저씨, 눈에 보이는 이익만을 쫓다가 이제! 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겠다고 야베스로 향한문 상사님 등등 난 이 분들이 바로 역사의 봄을 일궈내는 분들이라 믿는다.

주위를 가만히 둘러보면 역사의 봄은 오고 있다. 할 수 있다, 하자, 이번만은 꼭 이겨내리라, 등등 새롭게 희망을 향해 출발하는 역동의 소리가 들린다.

절망과 좌절, 나태를 벗어 버리고 비록 뚜렷이 보이는 희망은 없을지라도 내일은 분명 우리에게 더 낳은 삶이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바로 봄의 교향악이 아닌가?

서로를 배려하며 격려하는 소리,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는 소리들이 바로 봄을 알리는 소리인 것이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는 우리가 있기에 우리의 봄은 오고 있다.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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