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숭동의 세상 돋보기 ⑦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다.

▲ 한숭동 전 대덕대학 총장.

연탄은 난방과 취사를 동시에 해결해 주는 소중한 존재로 우리나라에서 석탄을 최초로 사용한 때는 명확하지 않지만 19세기 말쯤으로 추정된다.

1896년 서울에서 석탄을 판매했다는 기록이 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 도시 가정은 거의 다 연탄을 연료로 사용했고 집집이 굴뚝이 있었다.

당시에는 아파트에도 연탄아궁이가 있었다. 겨울철에 연탄불을 꺼뜨리면 큰일이었다. 불을 꺼뜨리지 않으려면 연탄이 다 타고 화력이 약해질 때를 짐작해 갈아 주어야 하는데 고생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한밤중에도 잠을 설쳐가며 연탄불을 돌봐야 했다. 연탄 갈기도 쉽지 않다. 불이 남아 있는 아래의 연탄과 구멍을 잘 맞추어야 불이 위쪽 연탄으로 잘 옮겨 붙는다.

연탄은 김장과 함께 가장 중요한 겨우살이 준비였다. 겨울이 다가오면 십중팔구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여름부터 일찌감치 광이나 처마 한 귀퉁이에 들여놓는다. 연탄 값은 1964년 초에는 장당 7원 정도였고 운반비로 50전 이상을 더 받았다.

현재 연탄 한 장 값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500~600원 정도다. 생산 원가는 1000원쯤 되지만 정부 보조로 가격을 낮추고 있다. 배달료는 한 장에 100원쯤 더 붙는다. 배달할 곳이 2층 이상이면 배달료도 비싸진다.

# 연탄으로 나누는 사랑, 대전 연탄은행 신원규 대표

활활 타오르면서 주변을 따뜻하게 해주는 연탄처럼, '나 아닌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대전연탄은행 신원규 대표(53). 어려운 이웃에게는 보석만큼이나 소중한 검은 연탄을 10년째 무료 배달하고 있다. 작은 개척교회인 새하늘 장로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신 목사는 탄광촌으로 유명한 강원도 사북 출신이다. 직접 탄광에서 일한 경험도 갖고 있다. 고교 시절 석탄과 관련된 자원개발공학과를 나와 연탄과는 친숙하다. 관련 자격증을 3개나 가지고 있을 정도다. 또 부친이 탄광에 근무해 연탄과는 불가분의 관계다. 연탄과 땔 수 없는 목회자인 셈이다.

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더 땀을 흘리는 목회자이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탄을 나눠주는 사랑의 봉사자다. 하루에 연탄 3장 단돈 1500원으로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이웃들을 위해 오늘도 신 목사는 리어카를 끌고 지게를 진다.

연탄은행은 2002년 봉사단체인 밥상공동체가 원주시 원동에서 시작한 운동이다. 가난한 이웃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도록 허기복 목사는 사랑의 연탄은행을 시작했다.

이후 전국 각지의 목회자들이 허 목사의 뜻에 동참했고, 2005년 2월 15일 연탄은행전국연합회가 조직됐다. 대전연탄은행은 2005년 12월 3일 전국에 있는 33개의 연탄은행 중 12번째로 문을 열었다. 현재 연탄은행전국연합회는 국내에 33호점까지 설립됐다. 키르키스스탄에 34호점이 설립돼 국외로도 사랑을 전하고 있다.

# '검은 보석' 온기, 동네 구석구석 실어 나눕니다

그러나 현실 문제로 돌아온다면 밝은 편이 아니다. 대전에서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은 1300여 가구다. 대전지역 연탄 수요는 130만 장. 연탄은행이 일 년 동안 공급하는 연탄은 대략 25만 장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 기업과 학교에서 기부가 이어지고 있지만, 예년의 기부액과 비교해 2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보통 10월 초에 시작한 사랑의 연탄배달 봉사는 다음 해 4월 말까지 계속된다. 겨울에 한창 바쁠 때는 바닥에 궁둥이 붙일 틈도 없단다. 대전지역 배달은 좀 나은 편이다. 최근에는 천안과 계룡시 등 지방에도 연탄을 배달하고 있어 조금 부담된다. 때대로 천안까지 가려면 아침 7시에 나가 저녁 어둠이 깔려야 돌아온다.

신원규 목사는 연탄 한 장 없어 냉방에서 겹겹이 이불만 두른 채 지내는 할머니들을 보면 이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입이 헌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무릎 연골이 찢어져 수술까지 한 그다.

너무 힘이 들 때엔 '하나님 이거 꼭 해야 합니까?'하고 자문하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의 온기를 나눠 준다는 사명감에 오늘도 연탄을 나른다.

광부들은 지하 수백m 막장 속에서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힘든 노동으로 석탄을 캔다. 그 석탄이 부서지고 다져져서 시커먼 연탄으로 다시 태어난다. 돈이 없어서 난방을 못 하는 낮은 곳의 사람들, 그들에게 연탄은 자기 몸을 태워 열기를 전하고 하얗게 사라져 간다.

연탄은 없는 사람들에게는 '검은 보석'으로 불린다. 연탄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닮아야 할 모습이다. 우리 모두가 대전연탄은행에 관심을 갖는 연말연시(年末年始)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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