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자가 발표를 하는데 관중석에서 종이비행기가 연단으로 날아든다. 200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로이 글라우버가 연단에 날아든 종이비행기를 빗자루로 쓸어 담는 동안 수상자는 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발표를 계속한다. 어떤 수상자는 발표 도중 칼 삼키기 묘기를 선보여 청중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나뒹굴고 있는 그림이 여기저기 찍혀있다.

도대체 이 어수선한 분위기의 시상식은 뭘까? 지난 4일 노벨상 수상이 있기 전에 하버드대에서 열린 이그노벨(Ig Nobel)상 시상식이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노벨상과 달리 괴짜 과학자들의 잔치인 이그노벨상 시상식은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열린다.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1000만 크로나(약 14억123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지만 이그노벨상 수상자에게는 한 푼도 주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시상식장까지 오는

이그노벨상은 미국 하버드대 ‘AIR’(Annals of Improbable Research: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연보)의 발행인 마크 에이브러햄이 1991년 제정한 상으로, ‘다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업적’을 남긴 과학자에게 주어진다. ‘품위없는’이라는 의미의 단어 ‘ignoble’과 노벨(Nobel)을 합쳐 이그노벨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품위도 없고 노벨상보다 인류의 과학발전에 미친 영향도 적지만, 사실 이그노벨상이 노벨상보다 훨씬 재미

수상 분야는 매년 바뀌는데 10개 분야에서 10건의 연구가 선정된다. 한 분야에 한 연구결과가 선정되는 것이 원칙이나 특별한 경우 한 분야에 복수 연구결과가 선정되기도 한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재기발랄한 괴짜 과학자들에게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다.

미국의 ‘에어포스 제작 연구실’은 평화를 가져오는 새로운 화학 무기를 창안하고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무기의 이름은 ‘게이 폭탄’(gay bomb). 연구팀은 폭탄이 적군 진지에 떨어져 화학 물질을 발산하면 적군의 병사들이 서로 ‘참을 수 없는 성적 흥분감’을 느껴 전투력을 크게 상실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밀에 감춰진 게이 폭탄 개발자는 이날 시상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않았다.

영국의 브라이언 위트콤 교수와 미국의 ‘국제 칼 삼키기 묘기 협회’ 댄 마이어 씨는 2006년 발표한 ‘칼 삼키기 묘기의 부작용’이라는 연구결과로 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16개국의 칼 삼키기 재주꾼 46명을 조사한 결과 재주꾼의 마음이 심란한 상태에서 칼을 삼키거나 관중을 위해 지나치게 어려운 재주를 부릴 때 내장에 상처를 입기 쉽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은 인후염과 비슷한 ‘검도염’을 앓는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상처 입은 재주꾼이 의사의 실수로 내장에 구멍이 난 환자들보다 더 잘 회복된다는 것.

물리학상은 침대 시트가 구겨지는 원리를 학문적으로 규명한 미국 하버드대의 엘 마하데반 교수와 칠레 산티애고대의 엔릭 빌라블랑카 교수가 수상했다. 이들은 시트 재료의 탄성력과 시트를 당기는 힘을 바탕으로 구김의 법칙을 세웠다. 법칙에 따르면 시트는 뻣뻣할수록 더 자잘하게, 크기가 커질수록 더 복잡하게 구겨진다. 이 연구 결과는 저명한 학술지인 ‘네이처’와 ‘피직스 리뷰 레터스’, 그

화학상은 쇠똥에서 바닐라맛 향료를 추출해낸 일본 국제 의학센터의 야마모토 마유 박사에게 돌아갔다. 미국의 한 유명 아이스크림 가게는 야마모토 박사의 향료를 사용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시상식에서 선보였다. 이 아이스크림의 이름은 ‘얌-어-모토 바닐라 트위스트’. 야마모토(Yamamoto)라는 이름을 ‘맛있다’(Yam)와 일본어의 ‘좀더’(Moto)라는 단어 두 개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향료의 값이 저렴한

올해 신설된 항공학상은 발기부전 치료제가 시차 문제가 해결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아르헨티나대 패트리샤 아고스티노에게 돌아갔다. 아고스티노 박사는 햄스터에게 발기부전 치료제를 투여했더니 시차 문제가 극복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람의 시차 적응을 위해 비아그라를 투여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많은 의사들은 회의적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그릇의 바닥이 보이지 않으면 평소보다 73% 더 많은 음식물을 섭취한다는 연구결과(영양학), 침대에서 하룻밤 동안 만날 수 있는 진드기와 벼룩, 곰팡이의 개체수를 일일이 전수조사(생물), 알파벳 순서로 인덱스를 제작할 때 나타나는 정관사 ‘The’의 문제점을 복잡하게 지적한 연구결과(문학), 또 은행 도둑을 즉시 잡을 수 있는 그물(경제학) 등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그노벨상을 받은 결과들은 대부분 실제 학술지와 저널에 실린 연구결과다. 이그노벨상 담당자 에이브러햄은 수많은 논문들을 살펴보다가 엉뚱하지만 기발한 연구 결과들에 끌려 이 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올해로 17회를 맞은 이그노벨상은 비판도 많이 받지만 ‘처음에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갖고 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한 것처럼 어찌 알겠는가. 괴짜 과학자
저작권자 © 시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