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 성돌 입면 백제 산성 특징…통일 신라 말·고려 초 제작 명문 기와 발견

▲ 대전시 기념물 제13호 적오산성에서 발견한 명문 기와편

[ 시티저널 허송빈 기자 ] 대전 분지의 북쪽에 대전시와 세종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금병산(金屛山) 자락이 남으로 흘러오다 독립된 구릉으로 솟아 있는 봉우리가 표고 256m의 적오산이다.

적오산성은 이 봉우리의 정상 능선부와 서쪽 사면에 걸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체적인 지세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이른바 동고서저(東高西低)형을 하고 있어 주 감시 방향이 동쪽임을 알 수 있다.

그 곳에는 대전 분지 동쪽편의 계족산을 주봉으로 하는 산지가 위치하고 있다.

성벽의 총 길이는 950m 정도로 동벽은 최고봉의 정상부와 그 동쪽의 또 다른 봉우리의 동변을 따라 축조됐다. 북벽은 주봉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가다가 남으로 꺾여 산사면과 계곡을 통과한다.

성문은 동서남북 4개가 있는 것으로 보고돼 있지만, 북문지와 남문지가 뚜렷하게 인식을 할 수 있는 반면, 나머지 2곳은 남겨진 상태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

성벽을 쌓은 방식은 지점에 따라 차이가 있다.

남쪽 벽의 경우 깬 돌을 서로 엇물리도록 거칠게 쌓은 반면에 남문지 서측 일부 성벽은 입면 모양이 사각형으로 다듬은 돌을 사용해 평행하게 쌓았다.

이런 평행 축조 기법은 삼국 시대 성에서 흔히 보이는 축조 기법이며, 이 가운데서도 성돌의 입면이 사각형에 가까운 것을 사용한 것은 백제 산성의 특징으로 보기도 한다.

이 같은 점으로 볼 때 이 성은 백제가 처음 만든 이후 후대에 다시 성벽을 수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내에서 발견한 기와·토기 등은 백제와 통일 신라, 고려 초의 것이 혼재해 성벽의 축조 기법에서 보이는 시기적 차이와 일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적오산성이 특별한 점은 명문(銘文) 기와(사진)의 발견 때문이다.

산성 내 건물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출토된 '적오(赤烏)' 명문 기와편은 어골문(魚骨紋)과 함께 한자 지명이 새겨진 것으로 대체로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제작한 것으로 본다.

기와에 쓰여진 글자는 까마귀 오(烏)자가 매우 소략화된 채 역상으로 새겨져 있다.

산성의 북쪽에 위치한 덕진동(德津洞)은 고려·조선 시대 공주목에 소속돼 있던 덕진현(德津縣)의 소재지며, 적오현(赤烏縣)은 덕진현의 백제 때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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