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m 규모 흙으로 쌓은 성…나말여초 시기 유성 일대 호족 성 추정

▲ 대전시 기념물 제6호인 구성동 산성은 흙으로 쌓은 토축성으로 성벽을 찾아 보기가 매우 어렵다. 나말여초 시기에 축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성은 유성 일대 호족의 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 시티저널 허송빈 기자 ] 산성의 도시 대전을 연재하는 첫 글에서 대전의 산성에서는 성벽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 가운데 가장 찾아보기 힘든 성이 바로 이번에 소개하는 구성동 산성이다. 구성동 산성은 전체 길이 580m에 달하는 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성벽을 찾아내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돌을 쌓아 성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흙으로 쌓아 만들었기 때문이다.

구성동 산성은 갑천의 북쪽에 위치하는 대전 분지 내부의 평평한 구릉성 산지에 축조된 토축성(土築城)이다.

대전 지방 기상청을 삼면으로 감싸고 있는 해발 86m의 성두산(城杜山) 구릉 정상부와 여기서 남쪽으로 좁고 길게 뻗은 해발 75m의 능선에 걸쳐 있는데 성두산을 감싸고 있는 본성(本城)과 능선에 만들어진 외성(外城) 두 개의 성으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외성은 성 밖으로 돌출시켜 성벽을 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인 치(稚)와 비슷한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성이 위치한 구릉의 동쪽에는 청동기 시대의 송국리 유형 단계부터 원삼국 시대에 이르는 주거지와 4세기 중·후반 무렵을 중심으로 하는 분묘군(墳墓群)으로 구성돼 있는 구성동 유적이 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인지 성 안팎에서는 원삼국 시대 이래의 토기 조각 등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성벽을 쌓았던 흙속에서도 9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전반 무렵까지 나말여초(羅末麗初)의 토기 조각들이 확인됐다.

구성동 산성은 대전 일대의 대부분 산성과는 지리적 여건이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성벽 역시 토축으로 돼 있어 그 성격이 판이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성은 나말여초 시기를 전후로 각 지방의 호족(豪族) 세력이 머물렀던 평지 또는 야산(野山)의 성으로 보는 학술적 견해가 있다.

구성동 산성 역시 나말여초 시기 지금의 유성 일대를 세력 기반으로 하였던 호족의 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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