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볼일이 있어 대전 서구 둔산동에 있는 대한법률구조공단 대전지부를 다녀왔다. 다행히도 이곳은 집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가기 편한 이유로 별 주저 없이 시내버스를 이용하였다. 볼일을 마치고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와서 버스를 기다리며 잔돈을 준비하려 하는데 간이매점에 사람이 없어 버스비용 잔돈을 만들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시내버스 승무원에게 잔돈 여부를 여쭈어 보니 그 승무원도잔돈이 없다고 해서 버스 한대를 그냥 보내고 말았다. 간이매점에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인도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무언가(간이매점 관리인)를 기다리고 있을 때쯤 요란한 자동차 경음기 소리와 심지어 경광등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하였다. 소리가 여간 귀에 거슬 이 때,자전거를 탄 주차관리원 아
연일 나라가 들썩인다.하루가 멀다하고 거리는 촛불로 불야성을 이룬다.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똑같은 마음이다.이미 거리는 하나의 축제의 장으로 변한지 오래다.과거 폭력의 아픔으로 점칠된 저급한 민주주의가 난무했던 시위와 집회가 아닌 한단계 진보된 성숙한 민주주의의 패러다임이라 부를만하다. 하지만 뉴스에서는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보도로 시끄럽다.여러 시민들의 크고 작은 부상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현실에서나 또한 시민의 한사람으로써 분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뉴스를 자주접하게 되면서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으며,그로인해 공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눈을 가지게 되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위대 일부도 쇠파이프를 들고 등장했고,경찰은 서둘러 긴급 성명서를 제출했다. 과격시위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 골자였다. 참
필자는 16여년의 사회생활 중 현재까지 11여년 작은 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라면 시간일 것임에 틀림없다. 이 시간을 지내오며 가장 신경을 많이 써왔던 부분이 영업이었고 그 다음으로 일반관리였으며 이러한 일반관리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신경을 썼던 부분은 당연 세금이었다. 수출주력 기업이었기 때문에 정부(세관)로부터 많은 절세의 혜택을 받았고 매입 계산서와 매출계산서 정리에 거짓이 없도록 나름대로 관리 하였다. 또 절세를 위해 세무사를 활용하여 정확한 상담을 하고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한 부문에 대한 세무사의 조언을 통해 과다한 세금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정부가 주는 절세의 모든혜택을 찾아 이를 적용하여 정직하게 계산하는 것이 절세라 할 수 탈세라고 하면 우선 거짓을 말한다. 일례로 2
최근 신문을 펼쳐들면 광우병,쇠고기 수입 반대 그리고 고유가,파업 등등 심지어 어음과 건설업체의 부도율이 다시금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들로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기사를 접하고 나면 지금 당장 나 자신에게 영향이 미치지는 않지만 왠지모를 걱정과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언제인가부터 무한경쟁이라는 말이 사용되어졌고 실제로 시장에 나서보면 어느곳 하나 쉬운 구석이 없는 경제사회가 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러함 속에서 무엇이 우리를 지켜낼 수 있고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7시까지 출근하기 위하여 아침 6시에 기상하여 끼니도 거르고 회사에 출근하여 하루종일 손님들 응대하고 직장상사 눈치를 보며 언제 생길지 모르는 사고(직장내 관리 미숙이나 과오로 발생하는 일련의 여러가지 것들)에
남자 셋이 모이면 한다는 이야기, 바로 군대이야기이다. 지금부터 본인의 군대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본인은 2004년 5월 6월 육군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였다. 가기 전엔 한참 멀게만 느껴졌던 군대라는 곳을 직접 가보게 된 것이다. 이전의 생활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군생활의 시작은 힘에 겹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나 자신을 건실하게 만드는 보람찬 시간의 연속이기도 하였다. 처음 입소대대에서는 취침 및 식사시간에 적응하기가 매우 힘이 들었다. 그러나 이 과정은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4일이 지난 뒤 아직은 낯선 군복을 입은 채 입소대대를 나와 논산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시설이 참 좋았다. 내무실과 세면장, 그리고 화장실이 매우 깨끗하였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제대군인에 대한 공약을 살펴보면 너무나 미흡하다 못해 무관심 한 것 같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누리는 경제적 풍요로움 뒤에는 6․25 휴전협정 후 155마일을 철통같이 지킨 장병들이 흘린 땀이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매년 29만 명의 의무복무 병사들은 학업적령기의 군복무로 인해 사회진출시기가 지연되어 병역 미필자에 비해 학업․취업 등에서 불리하고 있으며, 중간 간부로 중기(5년 - 9년)복무 후 재취업에 대한 준비도 없이 28세 전후하여 전역하는 제대군인이 매년 3천 명 정도 배출되고 있다.특히 10년 이상 장기복무 제대군인은 일반직 공무원과 달리 계급․근속․연령 정년제도로 인하여 평균 45세 전후하여 그것도 자녀들의 학자금, 주택자금, 결혼자금 등 가계비
“전역을 하면 국방부와 보훈청에서 다 아는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다시 꼭 신청을 해야 하는지...” 본인의 전역사실을 보훈청에서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을 몹시 의아해 하는 모습이었다. 현재 보훈제도 중 제대군인지원 등록신청은 장기적인 군 복무로 인한 불안정한 사회적응의 문제아직도 우리의 사회가 처한 대내외적인 주변환경에 의하여 군이라는 특수한 조직에 대하여 약간은 거리와 안보상의 이유를 들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직책과 전문성을 갖춘 경우에는 전역 이전에 전직을 위한 충분한 준비로 큰 문제가 없는 일도 있겠지만 다수의 전역군인이 생각하고 적응해 나가야 할 사회의 환경은 멀고도 낯선 초년생의 걸음일 뿐이다.우리 사회가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마음의 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관대
병무청에서는 2008년부터 현행 대체복무를 대신할 새로운 제도로 사회복무제도를 도입,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행 대체복무제도는 현역병을 선발하고 남은 인력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운영되어 왔으며, 그 동안 경찰관서, 행정관서, 산업체에 배치된 후 단순 보조업무만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체복무자 스스로 병역의무를 이행한다는 보람과 자긍심을 느끼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대체복무의 영역별 급여수준․근무여건 불균형에 따른 병역의 불형평성 및 단순 보조업무 수행에 따른 인 그러나 내년부터 새롭게 도입되는 사회복무제도는 기존 대체복무제도와 달리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첫째, 장애인과 노인수발 등 민간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서비스 분야에 대체복무 인력을 집중 투입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사
홍익대학교 광고홍보학부 4학년 박정민 얼마 전 연예인 문희준 씨가 전역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았다.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는데 문희준 씨를 칭찬하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문희준 씨가 누구인가? 입대 전 누리꾼들의 포화를 받으며 욕을 먹던 그가 아닌가? 심지어 그를 풍자하는 플래쉬 영상마저 큰 인기를 끌면서 한때는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홀연히 입대를 했고, 네티즌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간간히 그의 군 복무 소식이 인터넷에 전해져 올 때마다 악플은 점점 사라져 갔고, 어느 덧 그의 입대와 인내를 칭찬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많던 안티팬들은 언제부턴가 모두 문희준 씨를 응원하고 있었다. 사진 속 자신감에 찬 그를 보니 이제 두려울 것은 없어 보였다. 그 뒤를 이어
오는 11월 17일은 제68회「순국선열의 날」이다. 우리는 국경일을 비롯한 각종 행사와 기념식을 거행할 때 국민의례로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에 이어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올린다. 매번 관례적이며 당연하게만 하는 묵념이기에 어떤 분들에 대한 것인지, 왜 하여야 하는지 깊게 그럼, 순국선열은 어떤 분들일까?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어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는 비운을 맞게 되자 나라를 잃은 비분과 원통함에 자결하여 순절하거나 의병 또는 독립군으로 활동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신 분들, 그밖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피살되거나 옥사하신 분들이다. 나라에서는 순국선열들을 기리기 위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1939년에 을사조약 늑결(勒結)일인 11월 17일을「순국선열의 날」로 제정
국가의 안위를 늘 걱정하고 애태운다는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이 글은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체포돼 중국 여순 감옥에서 1910년 3월 자신을 취조했던 야스오카 세이시로 검찰관에게 왼쪽 장인을 찍어서 준 글이다. 그 당시 안중근 의사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낸 글이기도 하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우리나라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북만주 시찰을 명목으로 러시아 코코체프와 열차에서 회담을 마친 뒤 하얼빈역에서 내려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환영군중으로 가는 순간 권총을 쏘아 3발을 명중 처단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등을 차례로 쓰러뜨린 뒤 당당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안중근 의사가 이룬 이
푸른 산과 맑은 물과 파란 하늘이 있었던 아주 오래 전……지금은 급속한 산업화와 난무한 개발로 인해 그 깨끗함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환경운동을 굉장히 활발하게들 하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에 반하는 미숙함이 도시 여러 곳에 산 도시의 미관과 시민들의 안전 때문에 지상의 전선들을 지하로 매장하고 있으나 턱없는 예산의 부족으로 동네마다 이를 행하고 있지는 못하다. 참으로 지저분하고 위험해 보이는 전선들 과연 이대로 좋은가. 더구나 유선방송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관련업자들이 가설한 케이블의 모양새는 더더욱 형편없다. 가설을 할 때는 케이블이 늘어지거나 너무 낮지 않고 깔끔하게 설치하고, 고객의 이사나 해지로 인한 이전설치나 철거 때에도 방치하거나 지저분하게 정리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일반 소비자
대전시 중구 유천동에는 올바르지 못한 우리내의 양심 때문에 한 교차로에 기이한 차로가 있다. 문화초교 네거리에서 유천 네거리 쪽으로 동영상과 같이 진행을 해보면 유천 네거리에 이르러 오른쪽 모서리에 한 K금융기관이 있다. 여러차례 관찰한 결과에 의하면 이 K금융기관을 이용하는 다수의 시민들이 대로에 주차를 하고 용무를 본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명 주정차 금지 구역이며 교차로와 인접한 위치이기 때문에 이곳에 주차를 하면 교차로 통행에 상당한 불편을 주게 된 이러한 차선의 변화가 있기 전부터 이곳 K금융기관 앞에 불법주차하는 몰지각한 일부 시민들 때문에 시내방향으로 우회전 하는 차량들의 소통에 지장을 주었고 도마동 방향으로 좌회전 하는 차량들과 태평동 방향으로 직진하는 차량들이 2개 차로 중
사회활동을 하다보면 때로는 공공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곳을 많이 이용하게 된다. 예를들면 공항,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등 극장,백화점,공원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다양한 곳을 접하며 때에 따라서는 필요에 의해 직접 시설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설의 노후 정도에 따라 공항이나 호텔의 화장실과 같은 곳은 노숙자들의 휴식처로 사용되어질 만큼이나 쾌적하기도 하지만 버스터미널과 같은 이용하기가 꺼려지는 곳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황대처가 용이한 어른들의 경우 그러저럭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어린이들의 경우는 다른 것으로 나타나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학교화장실의 경우 어린이들의 배뇨나 배변에 장애가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특히 노후된 시설에도 큰 이유가
대전시 중구 유천동과 문화동의 경계에 위치한 문화육교를 동산고등학교에서 유천동/산성동쪽으로 넘어가면 문화초교네거리가 나옵니다. 이곳에서 우회전을 하여 불과 100여미터를 가지 못해 길 건너편에 오토바이 판매/수리점이 있습니다. 옆에는 한진택배가 위치하고 있고요. 오토바이를 수리하면서 발생하는 소음을 참기도 사실 힘들고, 주변 골목에 마치 폐오토바이로 보이는 오토바이들이 있어 미관에도 좋지 못할뿐 아니라 오토바이를 즐기는 어린 근처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자주 오며심지어 흡연이 목격 되기도 합니다. 제가 이글을 올리는 이유에는 참을 수 없는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태운다는 것 입니 경제가 어려운 지금,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누구
폭염으로 지루했던 여름과 계속되는 집중호우도 어느덧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 초입에서 9월의 달력을 유심히 쳐다보면 추석을 전후하여 빨간 숫자가 유난히 많이 눈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추석에만 관심을 가질 뿐 여타 숫자에는 관심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9월에는 우리가 기억해야할 아주 특별한 날이 들어있다. 9.17일 바로 우리 국군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광복군 창설일이 바로 이날이다. 광복군의 창설계획은 1919년 임정수립 당시 정부가 공포한 군사조직법에 연원을 두고 있으나 1936년을 전후하여 광복군 창설이 본격화 되어 1940년 9.17일 충칭 가릉빈관에서 광복군총사령부 성립 전례를 개최 광복군 창설을 공표했으며, 이청천 총사령관과 이범
1974년 내가 청강생으로 입학했던 대전 중구 소재의 문화국민학교 이제는 학교명이 문화초등학교로 바뀌어 학교교문에 새기워져 있다.지금은 학교건물 대부분이 그동안 새로이 지어졌고 당시 내가 입학했을 때 그 모습은, 많은 부분 변하거나 없어져 아쉬움이 많아진 곳이다. 그런 이 학교에 나의 큰딸이 지난 해 2006년 입학하여 지금은 2학년이 되어 있다. 큰아이가 입학하여 교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그 옛날 나의 기억을 뒤로한 채 큰 놀라움에 사로잡혀버리고 말았었다.오랜세월에닳고닳은교실과복도의 바닥과 묵은 때, 그리고 먼지와 아직도 그대로인 칠판과 책상과 의자들이 그 주인공들 이었던 것이다.뭔가가 거꾸로 가는듯 했다. 현대식 주택과 유치원에서 지내던 아이가 과연 아빠가 쓰던 교실에서 지낼 수
얼마 전 우려하던 FTA 쇠고기 문제가 타결되었다. 광우병의 문제로 두려워하는 국민들에게 수입 허용 범위를 확대하기 전에 철저한 검증을 거치겠다는 약속을 하였지만 대국민 약속을 뒤집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서두르고 있다. 1년여 걸리는 핵심 검증단계를 생략할 뜻을 내비친 것이다. 쇠고기 수입은 현재 타결한 이상 수용할 수밖에 없는 과제임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않겠다. 그러나 왜 국민들은 최소한의 건강상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일까? 과거 일본에서는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일본은 미국보다 훨씬 선진 시스템을 갖추었다. 이렇게 하면서 일본은 미국에 목소리를 높여 수입위생조건을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보다 더 엄격하게 수입하였다. 일본과 같은 대응은 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건강을 보장하